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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9. 2016

더치와 콜라병

네덜란드 사람들이 검소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이유!

모든 것은 콜라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남아공 북쪽. 

원시부족의 상공을 날아가던 경비행기에서 부조종수가 마시던 콜라병을 밖으로 던졌다. 그 콜라병은 아래로 떨어져 부쉬맨들에게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 된다. 그것을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로 인해 평화롭던 마을에 분쟁이 발생한다. 부쉬맨 족의 한 주인공이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이 콜라병을 신에게 돌려주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 이 영화는 1980년에 제작,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에 개봉되어 큰 흥행을 거뒀다. 콜라병은 말 그대로 자본주의와 문명을 상징했고, 이로 인한 원시부족 평화의 깨짐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코미디 영화라는 가벼운 탈을 쓰고 무거운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초등학생이었던 그때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은 콜라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부쉬맨 아저씨


더치와 콜라병

그렇게 모든 것을 시작하게 만드는 콜라병이 어느 날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내 앞에 놓인 콜라병은 매우 작았다. 어느 식당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200ml짜리 콜라병은 유리잔에 담으면 한 번에 다 담길 정도의 양 밖에 안되었다. 두 모금이면 끝난다. 한국에서 콜라를 기다란 맥주잔에 약 두 번은 부어 마실 수 있는 한 병의 양과 차이가 매우 컸다. 여기서 시작되었다. 나의 궁금증은. 도대체 왜?

개가 사람을 물면 작은 뉴스거리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큰 뉴스라는 말이 있다. 여느 다른 나라에서 콜라병이 이같이 작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평균 신장이 가장 큰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여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정말 간에 기별도 안 갈 양일 텐데. 그러니 더 궁금하게 다가온 것이다. 다른 유럽에서 시킨 콜라, 특히 스페인과 같은 라틴 유럽의 식당에서 시킨 그것은 대게 330ml의 두꺼운 캔으로 나오곤 하니 궁금증은 더해졌다. 물론 스페인 사람들은 네덜란드 사라들보다 한참 키가 작다. 우리네만을 보더라도 200ml 콜라병을 내어주는 식당은 거의 없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큰 키 이야기 "낮은 땅 높은 키" 참조)

이 작은 걸 두 번에 나누어 먹는 스킬이 생긴다. 익숙해지면.



키 큰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

사실 이 뿐만이 아니다. 2m에 다다르는 키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다리를 욱여넣어 기어코 작은 소형 해치백 차에 몸을 싣는다. 주로 팔리는 냉장고는 200~300리터 대의 소용량이다. 세탁기는 6kg 용량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이제야 7~8kg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먹는 것은 어떨까. 회사 친구들을 보면 그 커다란 키에 그저 치즈와 얇은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다. 더불어, 국민 개인 소득이 5만 불이 넘는 이 나라 사람들은 '싼 가격'에 매우 민감하다. 가전제품의 경우 최고 효율을 원하지만, 가격은 최저가를 넘어 최최저가(?)를 원한다. 그래서 주위에 'Korting (할인)', 'Gratis (무료)'라는 단어는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그저 단순하게 우리나라와 비교를 해본다. 중형차는 물론 대형차가 주를 이루고, 냉장고는 900리터 급을 넘어 화려한 디자인을 자랑하고, 세탁기는 드럼세탁기임에도 20kg은 넘어야 이불 정도는 빨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식사는 고기는 필수, 갖가지 반찬이 있어야 좀 차려 먹었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특히, 수요와 공급의 곡선 법칙을 위배하여 가격이 비싸면 팔리는 대표적인 시장 특성을 가지고 있다.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간극에서 오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이렇게 키 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먹고사는 걸까?


회사 근처 주차장. 작은 해치백 차량들이 한가득 하다.


군더더기 없는 사람들, 때론 지독하게 검소한 사람들

네덜란드 사람을 표현하기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은 그네들에게 꽤 어울린다.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만족하는 법을 안다. 복잡하게 살기보다는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북유럽 특유의 감성도 느껴진다. 그러니 매우 검소하다. 타 유럽 사람들은 더치 사람들을 보고 이야기한다. '더치 사람들은 캐러반 끌고 다른 나라로 여행하면서, 있던 자리에 감자 껍질만 놓고 간다'라고. 즉, 여행을 왔으면 그 지역에서 돈을 좀 쓰고 가야 하는데 가져온 음식만 먹고 가는 독한 사람들이라는 것. 물론,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타 유럽 국가의 사람들에게 각인된 인식이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재밌는 건, 이러한 이야기를 네덜란드 친구들도 나에게 해준다는 것이다.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네덜란드 사람들이 검소한 이유

'낮은 땅, 높은 키'에서 이야기했듯이, 네덜란드 사람들의 키가 갑자기 커져 평균 신장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이유는 단 한 가지로 설명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렇게 검소하게 된 것도 한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겠다. 다만, 아래 두 가지의 것들이 더치 사람들의 그러한 성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는 할 수 있다.


첫째, "종교(칼뱅주의)의 영향"


네덜란드는 16세기까지 신성로마제국, 즉 로마 가톨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독립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신교도들에 대한 가톨릭 세력의 무자비함이었다. 이에 네덜란드 칼뱅 주의자들은 1565년 헤이제 동맹을 결성한 후 80년에 걸친 반-가톨릭, 반-스페인 독립전쟁을 통해 독립에 이른다. 이때, 네덜란드는 역사상 처음으로 '칼뱅주의'국가로 독립하게 된다. 이후 360년간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칼뱅주의가 정치와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되었고 실제로 칼뱅주의에 근간을 둔 정당들이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칼뱅주의는, 칼뱅이 강조한 검소나 근면과 같은 가치를 중시한다. 바로 이러한 사상들이 뼛속까지 깊게, 그리고 정서에 진하게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참고로, 최근에도 1층의 거실 등을 커튼으로 가리지 않는 습관도 캘뱅주의의 '청렴함'에 기인한다. 즉, 나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는 청렴함의 표현이다. 동네에서도 산책을 하다 보면 각 가구의 거실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쳐 오히려 밖에서 보는 내가 당황하는 경우가 꽤 있다.


둘째, "삶을 개척한 사람들의 정신"


"신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네덜란드를 만들었다!"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다. 땅의 6분의 1을 개간했다. 저 북쪽 '대제방'을 가보면 돌을 하나하나 옮겨 만든 제방이란 걸 동상 하나가 말해준다. 그 동상을 보면 이해가 간다. 당최 사치나 낭비는 생각해볼 수 없는 분위기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침략을 통해 영토를 넓혔으나 네덜란드는 영토를 '만들어 낸'것이다. (물론 17세기 네덜란드도 활발한 식민 영토 개척을 실행하긴 했다.) 그러는 와중에 홍수가 나 몇 천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돌 하나하나를 쌓고 또 쌓았다. 더불어 영토가 그리 크지 않고 천연자원이 그리 많지 않으니 교역으로 먹고살아, 공산품과 같은 물건이나 재화의 소중함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북해와 에이셜호를 가르는 대제방을 하나하나 쌓아간 사람들에게 어쩌면 검소함, 실용주의, 근검절약은 당연한 이야기!




각각의 개인은 다르다. 하지만 이렇게 다르디 다른 개인도 집단으로 묶으면 집단의 성향과 특징을 갖는다. 각각의 나라와 민족에겐 그들만의 집단 무의식이 있다. 더불어 정서가 있으며 습관과 성향이 있다. 그래서 여행을 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살면 많은 것들이 새롭고 달리 보인다. 그래서 네덜란드 식당에서 맞이한 200ml 콜라병은 나에게로 하여금 많은 것을 궁금하게 했고, 또 그들의 일상을 자세히 보게 했다. 다시 말하지만,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대로 집단적 성향과 특징이 있다. 이에 근거한 차이점의 발견은 그래서 흥미롭다. 키가 크니 큰 걸 사용하고, 키가 작으니 작은 걸 사용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생각도 아니다. 다양함의 체험과 생각의 커짐이 즐거울 뿐이다. 어쩌면 그렇게 그 작은 콜라병은 나에겐 하늘에서 떨어진 그 무엇일지 모른다. 신이 나에게 준, 주위를 둘러보게 한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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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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