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램 타고 이방인의 마음가짐으로
벌써 2년이 지났어요. 3년 차가 되었지요.
네덜란드에서의 주재 생활은 참 좋습니다. 일은 힘들어도 사는데는 정말 더 없이 좋거든요.
어디서나 통하는 영어.
오픈 마인드의 친절한 사람들.
일이 많이 힘들어도 가족들이 잘 지내는 것을 보면, 나하나 고생해서 우리 가족이 행복하다면...이라는 전형적인 한국 가장의 모습을 발견하며 스스로 놀라기도 해요.
그러나 가끔은 그런 생각을 가지곤 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암스테르담은 참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한국에서도 뭔가 답답한 마음이 들면 홍대 앞이나 상수동을 찾았던 저에게 암스테르담은 그 이상의 인사이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이거든요.
차로 가면 집에서 약 20km의 거리라 나가는데도 큰 부담이 없죠.
가족들과도 자주 차를 타고 나가서 바람도 쐬고 차 한잔을 하기도 해요.
나라 이름만큼 유명한 도시의 아우라는 가벼이 넘기지 못할 만큼의 매력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혼자만의 시간. 트램을 타고."
생각해보니 여기 유럽 네덜란드에 와서 트램을 타 본 적이 없어요.
유럽 여행하면 뚜벅이와 트램이 그의 상징인데, 일에 묻힌 제 마음은 그럴 여유가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결심했어요.
일요일 어느 오후.
혼자 트램을 타고 암스테르담을 한 바퀴 돌고 오기로.
잠시 혼자 있고 싶었고, 이방인이 되고 싶었던 겁니다.
여행자 코스프레라고나 할까요.
와이프에게 교통 카드를 빌립니다. 그러고 보니 저에겐 교통카드조차 없었네요.
길을 잘 몰라 인터넷을 뒤집니다. 어떻게 가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제법 여행의 느낌이 납니다.
어차피 가는 거 같이 한 번 가보실래요?
제가 안내할게요.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시면 익숙하게 안내하던 그곳인데, 이렇게 트램을 타고 가려니 참 새롭네요. 낯설기도 하고. 트램 타고는 처음 가는 길이라 저도 살짝 설레고 두렵기도 하고요.
다행히 집에서 트램 역은 가깝습니다. 걸어서 약 5분 걸리죠. 그리고 그 역은 종점이라 한가하기도 해요. 51번 트램을 타고 가면 바로 암스테르담 센트럴 스테이션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28개 정거장, 약 38분이 걸리네요.
아래 이동 정보 잠시 보실래요?
종점에서의 출발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차창밖의 풍경이 못내 새로워 보입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귀에 이어폰을 꽂아 봅니다.
제법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즐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와이프와 아이들보다는 나를 좀 더 눈여겨봅니다.
눈을 감고 트램의 덜컹 거림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사실, 제가 탄 51번은 트램과 메트로의 두 가지 역할을 다 합니다. 메트로라고 불리다 보니 지하로 된 역을 지나치기도 하는데요. 해수면보다 낮은 이 땅에서 더 낮은 지하로 간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암스테르담 센트럴 스테이션에 도착을 했네요.
이곳 역시 지하역입니다.
없을 것만 같았던 지하역에서, 없을 것만 같았던 지상연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갑니다.
발 조심하시고요.
"이방인의 눈으로"
익숙해진 다는 것은 적응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참으로 좋은 말이지만, 소중한 것을 그저 지나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조금은 안타깝기도 한 일이죠.
그래서 오늘은 좀 낯설게 보려고요. 익숙하지 않게. 모든 것이 새로운 것처럼.
중앙역 앞으로 올라와 주위를 둘러봅니다. 트램 타고 처음 와봤으니 지금 보이는 풍경은 모두 새로운 거네요.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새로워 보입니다. 그저 익숙하게 흘려보냈던 풍경도. 사람도. 생각도.
암스테르담의 중앙역이에요. 많은 관광객들이 보이고 사람들과 전차, 그리고 자전거 자동차들로 붐비지만 저마다의 질서를 가지고 각자 갈 길을 가고 있어요.
카메라로 여기저기를 찍어 봅니다. 마치 암스테르담에 처음 온 사람처럼요.
이렇게 와본 건 처음이니까. 또 혼자와 본건 처음이니까.
중앙역 양 옆으로 탑에 시계가 있네요. 어라? 근데 자세히 보니 둘 중 하나는 시계가 아닙니다.
오른쪽 탑은 시계가 맞고요. 왼쪽은 바로 '풍향계'였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몰랐을 것들. 익숙함에 그저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이 생기네요.
그리고 중앙역을 등지고 앞을 바라봅니다. 햇살이 기꺼이 눈부시네요.
찡그려진 얼굴 표정이 그리 싫지만은 않습니다.
심호흡 한 번 깊게 해봅니다.
같이 해봐요. 스~읍.... 후~우...
괜스레 상쾌해집니다.
신호등을 건너 담락 거리 (중앙역부터 담광장까지 이어지는 거리) 입구에, 중앙역에서 등지고 왼쪽 대각선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View가 나와요. 출장자들이나 손님들이 오시면 필수 포토존으로 안내를 하는 곳이죠.
프랑스 파리에 왔으면 에펠탑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왔으면 여기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허풍을 떨기도 하죠. 암스테르담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거든요. 그리고 여러 가지 설명을 해줍니다. 여기 암스테르담의 집들은 왜 삐뚤빼뚤한지, 왜 기울어져 있는지. 설명하기는 조금 기니 예전 제가 올렸던 글을 참조해주세요.
낮과 밤의 느낌이 달라요. 그리고 저 앞에서 사진 찍으면 왠지 합성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잘 나와요.
아, 그리고 바로 그 앞에 암스테르담 커널을 유유히 다닐 수 있는 커널 크루즈 선착장이 있어요. 최근에는 한국어 지원도 된다는 반가운 소식. 아마 작년 중반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이젠 한국 분들도 예전보다는 제법 더 많이 오신다는 뜻이겠죠?
약 한 시간의 유유한 흐름은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합니다. 암스테르담 시내에만 90여 개의 운하 길과 1,500여 개의 다리가 있어요. 옆으로 지나가는 보트 하우스, 그리고 거기서 유유히 사는 사람들과 폭이 가장 좁은 집들을 보며 떠가다 보면 한 시간은 금세 흐르고 말지요.
암스테르담 시내를 걷다 보면 흥미로운 게 많습니다. 자전거의 속도는 정말 빨라요. 여기는 차보다는 사람이, 사람보다는 자전거가 우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관광객들이 자전거 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자전거 타는 속도가 매우 빠른데, 관광객들은 그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고, 신호등과 여러 가지 규칙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자전거의 모습도 암스테르담의 특색을 돋보이게 하죠.
또 한 번 자세히 볼까요? 어떤 자전거들은 손잡이에 브레이크가 없어요. 바로 페달을 뒤로 밟으면 브레이크가 되는 거죠. 평지가 대부분인 네덜란드에서는 많은 자전거가 그런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고, 또 치마를 입고도 여성분들이 쉽게 탈 수 있도록 다리사이에 Bar가 없기도 합니다.
사진 속 자전거는 아이들을 태우고 다닐 때 주로 씁니다. 특히, 학교 갈 때 많이 쓰는데 한 겨울에 아이들 얼굴이 빨갛게 거칠어져도 쌩쌩 달리는 모습을 보면 왜 네덜란드 친구들이 추위에 그리 강한지 알 것 같습니다. 그 옛날 하멜보다 먼저 한국에 표류한 '박연'이란 네덜란드 사람은 한 겨울에도 내복을 입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죠. ("박연이 하멜을 만났을 때")
그리고 앞서 말한 여기저기 기울어진 집들. (오래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지은. 다 이유가 있는.) 또 하나 암스테르담 시내에서는 'XXX'라는 표시를 자주 볼 수 있어요. 건물은 물론, 지나가는 배에도, 차를 막는 차막이 기둥에도, 그리고 사진과 같이 바닥 하수구 뚜껑에까지도. 이 문양은 암스테르담 시의 고유 문양인데 이 설명도 말하자면 기니 예전에 쓴 글로 대신할게요.
조금 더 들어가면 큰 교회가 보여요. "Ouderkerk"라고 불리는데, '오래된 교회'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길로 운하와 다리, 베네치아 느낌과 흡사한 물 위의 집들이 이 거리의 색을 더 강하게 합니다. 다리 위에서 찍는 운하의 모습은 또 하나의 그림이죠. 저는 여기서도 손님들을 세워 놓고 꼭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찍고 난 분들은 대만족을 하시죠. 운하와 운하를 잇는 작은 다리들은 이렇게 유유히 우리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줍니다.
밤에 찍은 모습은 어쩌면 좀 더 낭만적 일지 모릅니다. 고요함과 유유함. 그리고 분주하고 왁자지껄한 관광객들의 조화가 미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사실, 이 주변 거리는 '홍등가'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300여 개의 홍등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고, 골목골목에 거의 전라의 여성들이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죠. 우리나라의 홍등가와는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매춘이 합법이라는 것과 관광지라는 특성이 합해져 보기 드문 모습을 연출하고요.
홍등가 골목골목 사이를 연인이나, 유모차를 끈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많이 다닙니다. 곳곳에 섹스 샵과 콘돔 샵, 그리고 스트립쇼나 성행위를 무대에 올리는 라이브 극장이 있는데도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문화의 차이, 그리고 역사의 스토리로 설명이 가능하겠네요.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밤은 어느 누구의 낮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그 큰 교회 옆. 아래 사진과 같은 동상이 있습니다. 'Belle'상이라 이름 지어진 이 동상은 매춘부들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동판에 새겨진 내용을 자세 보실까요?
"Respect Sex Workers All Over The World"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문구죠? 세상엔 함부로 맞고 틀림으로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홍등은 낮에도 켜져 있습니다. 그 윗 집들은 일반 가정집이고요. 걷다 보면 길 곳곳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오래된 거리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정취와 유유히 운하를 떠가는 오리와 백조.
자, 마실의 마지막 코스입니다. 홍등가 길을 운하와 쭉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담광장에 도착을 합니다. 담광장에는 '네덜란드 왕궁'이 있어요. 예전엔 정말 왕이 살았던 곳이지만 현재는 국빈방문용으로 쓰고 있어요.
왕과 왕비는 현재 헤이그에 살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은 경제 수도이고, 헤이그가 행정 수도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왕의 날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큰 축제라도 있으면 담광장은 케르미스라 불리는 이동식 놀이동산이 들어옵니다. 그 규모가 그리 작지 않아 좀 놀랍기도 합니다. 담광장 맞은편에 작지만 우뚝 솟은 저 탑은 2차 세계대전 위령탑입니다. 중립국을 선포했음에도 침략을 받은 그 아픔이 고스란하고, 우리가 잘 아는 안네도 네덜란드에 숨어있다 잡혀 가기도 했죠.
"이방인으로 본 것을 소중히,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자 집에 갈 시간입니다.
온 길 그대로 돌아가면 되지요. 저도 처음이지만.
종점에서 종점으로. 도착한 집 근처 종점역은 언제나처럼 고요합니다.
이방인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귀환.
이제 일상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그리고 벅차고 새롭게 시작하려 합니다.
이방인 때 느낀 그 낯설고 소중했던 새로운 기분을 되새기며.
고생하셨습니다.
함께 다니느라, 여러 설명 듣느라. 그리고 수고한 51번 트램도.
P.S
오늘의 코스는 중앙역에서 네덜란드 왕궁까지 약 1.2km의 길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코스지만 볼 것도 많고 느낄 것도 많은 길입니다.
매일 보던 길로서도 그렇고, 이방인의 눈길로 봐도 그렇고.
직접 오셔서 연락 주시면, 실제로 안내해 드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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