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내가 외로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나는 나이의 변화에 따른 삶의 모양을 살핀다.
말 그대로 중년을 지나고 있으므로, 어쩌면 나는 삶의 모양을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된 것이다.
지나온 삶에 대한 아쉬움과 여운.
그리고 앞으로 살아 내야 할 삶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치열하다.
그렇게 치열하다 보면 외로움이 올라온다.
나 혼자만 허걱대는 느낌. 세상은, 다른 사람은 알아서 잘 살고 있는데 나 혼자만 아등바등 대는 그 느낌은 외로움 그 자체다.
젊은 날의 외로움은 불안의 다른 말이다.
외로우면 세상과 멀어지고, 세상과 멀어지면 나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닐까 겁을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년의 외로움은 휴식이다.
외로울 때 세상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세상과 조금은 멀어져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
나는 가끔 묻는다.
외로움도 외로울까? 외로움도 외로워 나를 찾아온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외로움을 더 이상 피하지 않는다.
외로움이 다가올 때, 나는 그 외로움을 따뜻하게 반기고 포용한다.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나면 결국 보이는 건 나다.
차분하게 앉아 외로움과 차 한잔을 나누며 나는 내 삶과 내 마음을 살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외로움의 실체는 또 다른 나였다는 걸 알게 된다.
외로운 내가 외로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나에겐 휴식이다.
그 어떤 쾌락과 요동, 호르몬의 인위적인 주입 없이 맞이 하는 세상 가장 자연스러운 휴식.
나는 때때로 좀 더 외롭자고 마음먹는다.
자발적 외로움을 통해 숨 한 번 크게 들이쉬자고 다짐한다.
혼자가 되어 적적하고 쓸쓸한 느낌.
이제는 그 느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오히려 친근하다.
중년의 휴식은 외로움이어야 한다고 오늘도 나는 나에게 나지막이 읊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