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방향이 어느 한 분이라도 글을 쓰셨으면 하는 것이므로, 나는 흔쾌히 함께 하자며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그런데.
글쓰기 실력 차이가 너무 난다면언제든 내가 도울 준비를 했으나, 막상 올라온 글을 보면 내가 감히 손대지 못할 정도로 좋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야말로 반전이다.
역시나, 글쓰기의 가장 강력한 적은 '나 자신'이란 말이 맞긴 맞나보다.
돌아보면 나의 글쓰기도, 스스로를 머뭇거리게 했던 가장 큰 원인이 다름 아닌 '나'였기 때문이다.
내 글의 첫 독자는 '나다'다!
많이들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나'는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자기 검열관'으로만 알고 있는데, 실은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라는 사실이다. 나의 진심과 내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글은 '나'를 감동시킬 수 없다.
무언가를 채우려 할 때, 그러니까 흰 여백을 채우려 하거나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려 할 때 글쓰기는 멈춘다.
멈추는 것에서 더 나아가, 더 큰 문제는 내 목소리와 내 자아는 없는 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글의 첫 독자인 '나'는 마음이 '동(動)'하지 않는다. 그 실망감에 못 이겨 '자기 검열관'이라는 엄격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기 검열관'에 위축되지 말고 나는 내 글의 첫 독자인 '나'에게 진실된 글을 썼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와 더불어, 내 글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해줄 것인가. 내 글도 마찬가지다. 부족하고 어설플지언정, 나를 진정 표현해주는 나의 글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랑해야만 한다.
요전엔, 글쓰기 클래스에서 각 수강생 분들이 올려 주신 글을 읽으며 피드백을 주었다.
글을 읽으며 나는 때로 소름이 돋고, 또 때론 내가 알지 못하던 표현을 보며 시기와 질투를 느꼈다. 그런 분들이 "작가님, 제가 글을 잘 못쓰는데..."라고 걱정하고 계신다는 것. 물론, 개선되어야 할 점이 여기저기다. 하지만, 나를 소름 돋게 하고, 공감과 위로를 주었다면 그게 더 소중하고 큰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 피드백란에는 개선점보다 더 많은 공간을 '독자인 내가 읽고 감명 깊었던 구절'을 적어 드렸다.
그분들은 자신이 그리 멋진 표현과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것을 알려 드리고 싶었다.
이러한 피드백을 처음 받았다고 하시며 감동하는 수강생 분들의 목소리엔, 더 나은 '작가'가 되겠다는 결연한 힘이 담겨 있었다.
내 글을 사랑하는 방법!
사랑에도 방법과 기술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분들에게 이 방법과 기술을 알려 드리고 싶다. 자신의 글이 부끄러워, 장점과 아름다움을 찾아내지 못하고 계신 분들에게. 헤집고 곱씹어보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표현과 통찰이 자신의 글에 들어 있다는 것들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
첫째, 내 글은 소리 내어 읽는다.
나의 글이 부끄러워서, 잘 못쓴 것 같아서 대부분의 분들이 글을 쓰고는 내팽기치듯 발행 버튼을 누른다.
그리곤 다시 보지 않는다. 대단히 위험한 습관이다. 누군가는 '글'을 산통 이후에 얻은 자식과 같다는 비유를 하기도 하는데, 그 비유에 동의한다면 위험하다 말하는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 혹은 발행 버튼을 눌렀다면 곧바로 내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
그러면 독자의 입장이 되어 자기 객관화가 되고, 알지 못했던 오류나 비문들을 맞이하게 된다. 소리 내어 읽기는 가장 좋은 '퇴고'방법이다.
그 과정을 거쳐야 나는 내 글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사랑은 자신감이란 텃밭에서 더 큰 열매를 맺는다.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감은 용기에서 나온다. 부족한 내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며, 부족함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내 글을 더 당당하게 해 주고, 내 글을 사랑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둘째, 내 글을 필사한다.
'필사'는 남의 글만 위한 것이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멋진 문장들이 튀어나온다. '이거 내가 쓴 거 맞나?'싶을 정도로 말이다. 글쓰기의 선물이자 희열이다.
명문장은 남의 책에서만 찾을 필요 없다.
내가 써 놓은 글들에 이미 많은 멋진 말들이 그득하다.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써 놓은 글을 뒤적여, 그곳에서 멋진 문장 몇 개를 지금 당장 필사해보자.
이제껏 몰랐던, 내 글에 대한 사랑이 피어오를 것이다.
셋째, 모아 놓은 글을 다시 읽는다.
두 번째 이유와 맞닿아 있다.
나는 간혹 내가 출판한 책이나, 브런치에 쌓아 놓은 글을 읽는다.
나르시스트라서가 아니다.
지난 글엔, 지난날의 내가 있다. 지난날의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느낌이 있다. 그때는 받아들일 수 없던 많은 것들을, 이제야 나는 그것들을 포용할 수 있게 된다. 포용은 사랑의 마음으로 가능하다. 사랑스러운 느낌을 담아 지난날의 내 글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과거의 나와 화해할 수 있다. 그 매개체가 되어준 나의 글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불어, 그간 몰랐던 틀린 맞춤법이나 기억하지 못했던 나만의 명문장을 발견하는 건 덤이다.
내 글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성에 차지 않는다고.
그저 써 놓고 방치만 한 건 아닌가 돌아봤음 한다.
내 글은 내가 돌아봐야 한다.
돌보고 보듬고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글이 제대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내 글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