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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13. 2020

집에 있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런 분주함이라면,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출근과 통근은 직장인에겐 숙명이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그 공식을 바꿔 놓았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바뀔 때 그 속도가 더하다. 직장인인데 출근길에 오르지 않는 날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는 건, 일을 안 하고 있진 않다는 뜻이다.

출근과 통근이라는 행위가 줄어들었을 뿐, 직장인의 본분은 유지되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점심 먹고 창밖을 바라보던 그 순간, 정오의 전철 안을 상상했던 적이 있다. 나는 여기 교실에 갇혀 있는데, 이 시간에 햇살을 머금고 전철에 오르는 사람들은 누굴까. 그 시간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부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직장인이 되어 평일 정오에 (휴가가 아닌 상태로) 집에 있으니, 그때 그 마음과 질문이 떠오른다.

그러게. 내가 회사 사무실에 있을 때 우리 집 모습은 어떠한 지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나. 그 어떤 질문도 사치일만큼 직장인은 분주하다.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직장에선 잠시 집을 잊어야 할 만큼.


출근 시간이 지난 집은 고요하다.

그러나 가족은 분주하다. 각자의 화면 앞에 앉아 비대면과 같은 대면, 대면과 같은 비대면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바쁘다. 출근하고 등교하지 않을 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


집안일은 분주함 그 자체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여유가 무색할 만큼 아이들은 자주 배고파하고, 어디 나가지도 않는데 빨래는 켜켜이 쌓인다. 택배로 오는 모든 것들의 절반은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 가족 모두가 집안일에 총동원되지만, 그 일은 끝이 없다.


사실, 회사에 있을 땐 나만 분주한 줄 알았다.

집에 가 편히 쉬고 싶단 생각을 했던 적이 많다. 그러나 집에 있으니 평일 집의 분주함이 비로소 보인다. 가족이지만 저마다의 삶이 있고, 저마다의 삶은 각자의 분주함을 부여한다.


그 분주함을 잘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집은 지켜지는 것이다.

결국, 서로의 분주함이 집안의 평화와 포근함을 만들어 낸다.


내가 향유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덜 부러워해야지 마음먹는다.

대신, 나는 무엇으로 분주하고 왜 여유가 없는지를 돌아보려 한다.


그런 분주함이라면,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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