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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15. 2020

'감성'으로 쓰고 '이성'으로 퇴고(합리화) 한다.

쇠가 물과 불을 오가며 더 단단해지듯 내 글도 더 강해질 수 있다.

글쓰기는 머리보다 마음으로


흔히들 글쓰기는 '머리'로 한다 생각한다.

고상한 지식이나 드넓은 교양이 있어야 무언가를 꺼내어 놓을 게 있고 그러하므로 글을 써낼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 분명코 합리적인 추론이며 누구라도 반대할 수 없는 접근이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이에 반대하기보다는 좀 더 열린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머리로 아는 것이 많지 않아도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꼭 아는 것이 많아야지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이는 '마음'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글쓰기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감정으로 행동하고
이성으로 합리화한다.


심리학에서 밝혀낸 사람의 메커니즘이다.

'의사결정 능력'은 감정에서 나온다. 우리 뇌에 있는 '전두엽'은 이리저리 효율성을 따지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의사결정을 하는 건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눈앞에 맹수가 나타났다. 전두엽을 활용해 '오른쪽으로 도망가는 게 더 효율적일까, 아니면 왼쪽으로 가는 게 더 나을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우선 도망가고 본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공포라는 감정이 생겨 몸을 피하라는 '의사결정'을 한 것이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머리로는 먹는 칼로리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정작 나의 몸을 일으켜 기어이 나가 뛰게 만드는 건 이래선 안 되겠다는 자책감이나 1년 전 입은 옷이 맞지 않을 때 생겨난 충격의 '감정'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마케팅이 잘 활용한다.

당장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사게끔 감정을 흔들어 놓고, 결국 이성으로 합리화하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예를 들어, (당장 필요 없는데...) 밝게 빛나는 사과 모양에 홀려 값비싼 노트북을 구매했다면 '그동안 힘들었던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거나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해내려는 필요'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감정으로부터 시작된 무엇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글쓰기를 시작한 그때로 돌아가 보자.

나는 왜 쓰고 싶은 걸까?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시킨 일이다.


그러니, 글쓰기는 '마음'으로부터 여야 한다.

'마음'이 써 내려가도록 놔두어야 한다.


가뜩이나 현대 사회는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경계한다.

이성과 합리만이 가득하다 보니 '감정'을 드러내는 그 자체를 혐오하거나, 하수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글쓰기는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가 대세가 되고 있는 이 현상 또한 나는 허투루 보지 않는다. 오갈 데 없는 마음들,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정서들이 글쓰기를 시작하라고 사람들의 등을 아니, 손을 떠미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거나, 이 책을 집어 든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작가는 '감성'으로 쓰고
'이성'으로 퇴고(합리화) 해야 한다.
독자는 '이성'으로 읽고 '감성'으로 해석하니까.


그러나 '감정'으로만 써내려 간 글은 죽기 전에 태우고 가야 할 일기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여러 번 강조했지만, 글에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메시지는 '자기반성'과 '역지사지' 그리고 일상을 달리 보는 '통찰'에서 온다.


내가 느낀 바를 아낌없이 내어 놓았다면, 이후엔 냉철하게 내 글을 점검해야 한다.

'감정'과 '이성'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아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관건이다.


그래서 나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작가는 '감성'으로 쓰고, '이성'으로 퇴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독자는 '이성'으로 읽고, '감성'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작가와 독자의 관점 차이 by 스테르담


여기서 눈 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감정'이 아닌 '감성'이다.

'감정'이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기분이라면, '감성'은 그 기분을 알아차리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즉, '감성으로 쓴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승화하여 내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이후엔 '이성'으로 내 글을 다시 읽으며 고쳐나가야 한다.

풍부하지만 어수선한 글을 잘 정리해야 한다. 적절한 비유와 근거를 들어 내 '감성'과 '메시지'를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에게 '내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독자들은 우선 눈과 머리로 글을 읽고, 그 완성도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그 글의 첫 문장부터 오타가 있거나 비문이 득실댄다면 어떨까? 주장의 앞뒤가 맞지 않고, 저자의 목소리는 분명하지 않으며 그 근거가 얼기설기하다면?

그 글은 읽히지도 않을뿐더러, 읽힌다 하더라도 감동과 메시지는 독자에게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성으로 하는) '퇴고'가 글쓰기 이상으로 중요한 이유다.




글쓰기를 할 때 머리를 쥐어짤 필요 없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게 더 낫다. 머리보다 앞서는 마음을 짓누르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마음에서 나오는 글이 머리에서 나오는 그것을 능가한다.


머리가 개입되어야 할 때는 글쓰기를 하고 난 이후다.

뜨거운 마음이 쏟아 낸 글을, 차가운 머리가 살피면 쇠가 물과 불을 오가며 더 단단해지듯 내 글도 더 강해질 수 있다.


'마음'과 '머리', '감성'과 '이성'을 합쳐야 '나'가 된다.

어느 한쪽을 맹신하거나 있는 그대로 쏠리면 그건 내가 아니다.


글쓰기는 그 모든 걸 포함한 과정이자 결실인 것이다.


P.S


'즉흥적으로 써 내려가는 글쓰기도 괜찮을까요?'란 한 수강생분의 고민에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좋다고 알려 주고 싶었다. 나오는 대로 써가는 것이 완성도를 떠나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 주고 싶었다. 나중이 무서워 시작조차 못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결국 이 '마음(감성)'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든 것이다.


'감성'으로 쓰고, '이성'으로 퇴고한 글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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