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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01. 2021

무례한 나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그런 나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바로 '자기 포용'이다.

"아우, XX"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한 욕이다.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제대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거나. 조금 더 살펴봤다면 일어나지 않거나 잘못되지 않았을 일들을 마주했을 때. 나는 뼛속까지 나 자신을 저주하고 욕했다. 그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와 자괴감으로 뒤섞여 있다. 자아를 분열하고, 스스로를 파괴하여서라도 존재를 바로 세우려는 그 노력은 실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종합해보면 존재를 존재시키기 위한 발버둥이자, 살고자 하는 몸부림 그 자체다.


그러나 자신을 그렇게 스스로 내동댕이치는 마음의 요란은 잠시 잠깐의 후련함과 길고 긴 후유증만이 남는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나에게 가장 무례했던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누군가로부터 들은 험한 말이나 욕도, 내가 나에게 한 것을 능가한 적이 없다. 아니, 반대로 내가 나에게 하는 욕과 분노는 어느 누구의 것을 능가해왔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서일까.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서일까.


그 자책과 욕설은 차갑다 못해 매섭고, 매섭다 못해 혹독하다.

그러나 차곡차곡 나이를 쌓고 중년이 된 이 마당에 나는 나에게 더 이상 무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남에게 무례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는 것처럼, 내가 나에게 무례하면 아마도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갑질 하면 안 되는 시대에, 내가 나에게 갑질을 해대서야 되겠는가.


어리석음과 분노에 흥분하여 머리를 쥐어뜯거나, 스스로에게 폭언을 던졌던 나를 용서하자고 마음먹는다.

나에게 무례했던 나에게, 지금도 무례한 나에게, 앞으로 또 언젠가 무례할 나에게 그저 웃음을 전하자고 다짐한다. 무례함에 울고 웃고 하는 시간은 이제 덧없다. 그토록 많은 무례함이 나에게 준 쓸모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잠시라도 무례하여 나 자신을 질책하고 무언가를 얻어내려거나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속셈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나에게 가장 무례한 나 자신.

그런 나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바로 '자기 포용'이다.


내가 나를 포용하지 못하면, 그러하지 않는다면 나의 무례함을 계속될 것이다.

계속되는 무례함은 또다시 나를 넘어뜨릴 것이다. 넘어진 사이 나를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시기 질투하며 나의 무례함의 화살은 또다시 나를 향할 것이다.


이젠, 있는 그대로의 나를 포용할 때도 됐다.

아니, 이젠 그러해야 하고 그러할 수밖에 없는 때다.


사실, 나는 잘 되고 싶다는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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