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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14. 2016

발렌타인데이 두 남자의 데이트

"우리, 드라이브나 할까?"

지독한 피곤감이었다.

회사를 방문 한(이라고 쓰고 '들이닥친'이라 되뇐다.) VIP도 모자라 VVIP를 모시느라 기진맥진한 나는 녹초가 되어 들어왔다.


회사생활 중 빈번히 일어나는, 이른바 장사 하루 이틀 한 일도 아니지만 그 피곤함을 가중시킨 건 역시 토요일이라는 타이틀 이었다.


오후  4시였고, 이성과 의지는 이제 무언가 나를 위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이미 눈은 반쯤 감겼고 몸은 침대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침대에 쓰러지고 있을 즈음, 그 이른 시간에 나를 따라 자겠다는 첫째 녀석의 떼 아닌 떼가 귓가 저 멀리 들렸다. 그러곤 꿈도 꾸지 않을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


"이른 새벽, 두 남자의 조우"


다시 눈을 뜬 건 정확히 일요일 새벽 오전 3시 45분.


오랜만에 마주한 나와의 시간은 새롭고 소중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 들리는 무언가의 바스락 거림.


모니터 앞에서 그동안 머릿속에만 맴돌던 생각들을 글로 어떻게 써볼까 고민하는 내 뒤로, 나를 따라 잠든 첫째 녀석이 멀뚱히 서있었다.


사람은 둘 만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무언가 특별함을 느낀다.

항상 가족 함께 하던 것이 당연해왔는데, 이 새벽 두 남자의 조우는 '새로운 조합'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를, 뜻밖에 나의 제안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게 했다.


"우리, 드라이브나 할까?"


"그렇게, 두 남자의 데이트"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씨.

들뜬 마음에 옷을  갈아입겠다며 분주하게 준비하는 그 녀석 뒤로 나는 밖을 향했다.


평생 남자에게 드라이브 신청을 할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 없다.

물론, 내가 두 아들의 아빠가 될 것이란 것은 생각은 물론 상상조차 하지 않았더랬다.


추운 날씨이기에 미리 차 안을 데우기 위해 시동을 켜놓는다.

항상 앞 조수석에 앉길 원하는 녀석을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 시트 포지션을 가장 높게 조절한다.


이른 새벽 도로에 차는 없고 조용하다.

둘이 이야기 하기에 더 없이 좋은 시간.

사람들은 그래서 드라이브를 즐긴다.


문득 연애할 때의 드라이브 기억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차를 데워 놓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준비하고 그리고 속삭이는 달콤한 말들.


지금은 사랑의 속삭임 대신 학교에 있었던 일을, 갖고 싶은 로봇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 대신 첫째 녀석의 만화 주제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설렘과 행복은  다름없다.


그러고 보니 발렌타인데이.

그리고, 그렇게 두 남자의 데이트.


신나는 드라이브를 마치고, 난 이 마음을 잃지 않으려 글로 옮기고 있다.




이 녀석은 자랄 것이다.

생각보다 더 빨리 자랄 것이다.

그리고는 나와 같은 아들이 될 것이다.

속도 썩히고,  첫사랑에 가슴 아파하고, 부모보다는 한 여자를 더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가장의 무게는 물론, 남자로서 겪어야 하는 수 많은 사회적 숙제도 덤덤히 받아 들일 것이다.

돈도 많이 벌어야 하고, 명예와 지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부질없다는 것도 깨달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난 이 녀석이 우리의 데이트를 기억했으면 한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이러한 추억이 없는 나와는 달리, 나와 함께 한 이 시간을 이 녀석이 나중에 어떻게  기억할지 정말로 궁금하기 때문이다.


먼 훗날, 이 글을 보며 함께 이야기해보자.

우리 둘의 시간이 너에겐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를.


거창하지 않더라도 소중하게 기억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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