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 Anna Karenina -
글쓰기를 할 때 나를 괴롭히는 건 바로 첫 문장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상당하다. 특히 글쓰기에서의 첫 문장은 첫 단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옷의 단추야 다시 풀어 채우면 되지만, 글은 그러할 수 없다. 전체를 다 갈아엎어야 한다. 아니, 갈아엎을 수 있을 정도로 써 내려가면 다행이다. 첫 문장을 제대로 써내지 못하면, 글은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의 잔인한 매력은 여기에 있다.
모든 게 시작이다.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훅하고 들어온 그 순간, 글쓰기 플랫폼을 열어 첫 글자를 적는 그 순간, 제목을 생각하고 쓰는 그 순간, 그리고 마침내 첫 문장을 써내는 그 순간. 글쓰기는 설레는 '시작'을 선물해주지만, 그렇다고 그 시작의 결과를 보증해주거나 대신해주지 않는다. 그 시작 앞에 좌절하고 넘어지고 쓰러질 때가 더 많다. 그러한 좌절을 느끼게 할 거면 시작이라도 하게 하지 말지란 푸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물론, 그건 푸념일 뿐이다. 이제라도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나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은 누구라도 펜을 들고 싶게 만든다.
당장, 첫 문장만이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불행이 있다는 말. 내게는 좋은 첫 문장의 탄생 배경은 비슷하고, 맘에 들지 않는 첫 문장은 저마다의 푸념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행복한 자, 첫 문장을 제대로 써낸 자는 변명할 필요가 없다. 반면, 그렇지 않은 자들의 푸념은 변명이자 처음부터 제대로 끼워지지 않은 단추와 같다.
첫 문장의 무게와 그 가치
서점에 갈 때면, 나는 베스트셀러나 명작의 첫 문장을 유심히 본다.
그 첫 문장엔 저자의 심혈을 기울인 고뇌가 녹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마음이 가볍다. 첫 문장이 자신을 사로잡으면 좀 더 보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덮어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첫 문장의 무게를 느끼고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이제는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내 글, 내 책의 첫 독자는 다름 아닌 '나'다. 나 조차도 내 첫 문장을 보자마자 책을 덮어버리거나, 스크롤을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글을 쓰진 않을까 솔직히 두렵다. 글의 첫 문장은 나에게서 나오지만, 내가 그 문장을 읽고 만족해야 다음 문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문장들이 이어지고 모여 글을 이루므로, 첫 문장의 중요성은 그리도 내 마음에 깊이 인박여 있다.
돌이켜보니, 첫 문장에 대한 강박과 무게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그 순간이 글쓰기의 모든 시작임을. 그 순간이 매우 소중함을 이제와 깨닫는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첫 문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도 어찌어찌하다 보니 '첫 문장'이란 큰 산을 넘었다. 톨스토이와 같은 명문장을 만들진 못했을지라도, 끊이지 않고 채워져가고 있는 지금의 글에 그저 벅차다.
모든 글은 한 줄로 시작한다.
모든 글엔 첫 문장이 있다.
물론, 단어로 시작할 수도 있고 길고 긴 두 세줄의 문장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것들이 글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지, 첫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내 생각의 기승전결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때론, 첫 문장이 그리 특출나진 않더라도 그다음이나 본문 어느 중간에 소중한 가치를 녹여내는 것도 좋다.
이 또한 첫 문장을 자연스럽게 써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첫 문장,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지난날 고뇌했던 방법들이 몇 가지 떠오른다.
첫째,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적는다.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은 내 생각과 감정을 먼저 읽는 것이다.
글쓰기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글쓰기를 결심했을 것이다. 그 결심, 내가 전하고자 하는 생각과 감정이 바로 '목적'이다.
목적은 '방향'을 말한다.
글의 방향이 제대로 정해진다면 글쓰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정한 방향으로 글을 써 내려가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향이 모호할 때다.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은지가 불분명하다면 방향은 제대로 설정될 수 없다.
내 생각과 감정에 그 명확한 방향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둘째,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다.
명언이나 격언, 또는 다른 명문장을 인용하는 것이다.
많이 알려진 방법이지만, 중요한 건 이 인용구가 주체가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내 문장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인용구는 내 생각과 감정을 뒷받침해주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인용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글이나 책을 볼 때면, 무언가 순간적으로 어떤 지식을 얻는 것 같지만 읽고 나면 남는 게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첫 문장에 훌륭한 다른 이의 말을 인용한다면, 말 그대로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모셔야 한다.
주인은 '나'다. 유명한 말이라고 써 놓고 내 생각을 풀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하고 그에 맞는 인용구를 찾아야 한다.
내 생각과 목소리를 내는데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로 (인용구를) 생각하고 첫 문장으로, 귀하게 손님으로 모시는 것이다.
셋째, 질문을 던진다.
내 글과 책을 읽어 주시는 분들과의 밀당.
내가 고민하는 바를 독자 분들에게도 던지고 같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공격이나 내가 우위에 있어서 던지는 오만이 아니다. 답을 알고 묻는 게 아니라, 내가 이것에 대해 좀 더 먼저 깊이 생각해 보았고 그래서 내 생각을 풀어 나가겠다는 일종의 선의적인 선전포고다.
그 첫 문장의 위력은 강해서, 독자분들도 함께 몰입하고 사색하며 글을 읽어 갈 가능성이 높다.
단, 내 생각의 깊이가 읽는 분들보다 더 깊어야 한다.
정답은 아니라도, 내 사색의 깊이가 깊다면 그 누구든 기어이 설득당해주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 정성은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사색의 깊이보다 얕은 글을 우리는 읽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쉽다.
첫 문장으로 질문을 던지는 건 아주 좋은 방법이지만, 동시에 내가 깊이 그 질문에 대해 미리 고민했는지는 확인해야 함을 잊지 않으려는 이유다.
글쓰기는 참으로 고된 시작이다.
말 그대로 기쁨과 슬픔이 얽히고설켜있다.
첫 문장의 무게와 부담도 그렇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첫 문장을 잘 적었다면 그 뒤의 이야기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이 잘 풀린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글이 잘 써지는 날은 멋진 제목과 첫 문장만 써내도 글의 절반 이상을 써낸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글의 마무리도 기대보다 더 잘되어서 이 맛에 글을 쓴다는 희열을 얻는다.
나는 솔직히, 첫 문장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그 순간을 즐기고 싶다.
그 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고민할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좀 더 성장할 거라 믿기 때문이다. 홈런왕은 홈런을 가장 많이 친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삼진아웃을 당한 사람이기도 하다.
매력은 잔인할 때 더 유혹적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글쓰기에 훅 넘어가고, 글쓰기를 훅 넘어오게 하는 '쓰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