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것은 외부가 아닌 내면의 소리였을 겁니다. 사회에 발을 내딛고 이유도 모른 채 뛰어왔던 나에게,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는 건 사치였습니다. 외부의 소리만 쫓던 삶이었는데, 내면의 소리가 들려 온건 아마도 살고 싶다는 스스로의 외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겁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소홀했던 그 어느 순간에, 무언가를 잃었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제야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겁니다.
그 내면의 소리는 저에게 글을 쓰라고 말했습니다.
'글? 글이라고? 써본 적도 없는데? 내가? 내가 글을 쓴다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온 또 다른 마음의 소리였습니다.
일기조차 쓰지 않아 왔고, 글쓰기와는 전혀 관련 없던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라'는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입니다.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납니다.
왜 글을 쓰시는지에 대해 물으면,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어쩌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대답을 하십니다. 글과 관련이 없었지만, 결국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이죠. 어려운 시절을 지나고,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경험을 지나 인생의 쓴 맛을 보고 나서는 결국 내면의 소리를 들은 겁니다. 그 내면의 소리는 다름 아닌 '글쓰기'였을 테고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소위 말해 '신내림'받은 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말도 안 되게 아픈 어떤 병을 얻은 분들이 결국 신내림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그분들도 살고자 신내림을 선택한 겁니다. 더불어, 누군가에겐 미래를 이야기하거나 삶의 방향에 조언을 주고자 하는 것이 그분들의 소명일 겁니다.
이를 보자 저는 '글내림'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글과 전혀 상관이 없던 사람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죽을 것 같이 아팠던 마음과 영혼이 글쓰기로 치유되고 그 글이 또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준다는 이 과정을 살펴보면, '글내림'이란 말이 떠오른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글내림'은 온다고 믿습니다.
시점의 차이이지, 내 안의 것을 돌보고 매만지고 오롯이 꺼내 놓아야 내가 살 수 있는 그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글을 쓰진 않습니다. 글쓰기와 상응하는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가 좋다고 누군가에게 강요하거나 억지로 시작하게 만드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마음이 요동했다면 서슴지 말고 글쓰기를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배우지 않아서, 해본 적 없어서 머뭇거릴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어라도 써내면 나에게 위로와 용기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내가 매만지지 못했던 내 마음을 알아주게 되며, 생각지도 못했던 통찰들을 쏟아내게 될 겁니다.
글쓰기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돌아본 나는 글을 씁니다.
글을 쓰자는 내면의 목소리는 결국 나로부터 왔고, 글쓰기를 통해 얻는 모든 희열과 축복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어쩌면, 글쓰기는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랑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