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걷고 있는지, 이 길은 누가 만든 것인지를 알 겨를도 없이 나는 눈을 뜨자마자 걷고 또 걷고 있었다. 때론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를 느끼기도 하고, 또 때론 홀가분하게 뛰기도 했으며 다른 어떤 때는 서있을 힘조차 없어 기어가기도 했다.
분명한 건, 나는 앞으로 나아감을 멈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은 정지한 적이 없고, 내 몸의 풍화는 일어나지 아니한 적이 없다. 가던 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한들, 무빙워크를 타고 있는 것과 같이 나는 계속 등 떠밀려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옆으로 보이는 세상과 타인들의 뜀박질은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나도 그들처럼, 나도 저들처럼. 나도 저기에서, 나도 여기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행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오히려 나를 짓누르고 또 짓누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영혼을 팔아 맞바꾼 것들엔 내가 없다. 성공과 행복이 여기 있으나, 나는 여기에 없는 아이러니. 누가 삶을 이렇게 설계했는지 야속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똑똑하단 생각이다.
잡힐 듯 말듯해야 사람은 기어이 움직인다.
사람은 열등감과 부족함을 매우려 숨을 쉬는 동물이니까.
다시 다리에 힘을 주어 걷는다.
길을 걷다 힘든 건 오래 걸어서가 아니다. 다리 힘을 풀리게 만드는 건 '이 길이 맞나?'란 의구심이다. 뒤를 돌아보면 헛헛함만이 허공을 가르고, 앞을 보면 어둠만이 가득하다. 과거와 미래에 갇혀 나는 옴짝달싹 못한다. 앞뒤로 꽉 막혀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존재의 한숨은 꽤나 깊다.
그래도 어쩌겠나.
숨은 쉬고, 밥은 먹어야지.
한숨은 다음 걸음을 위한 충분한 에너지가 된다.
어쩌면 길이란 건 애초에 없었을지 모른다. 내가 내딛는 그곳이 곧 길이었을 테니까. 대단한 탐험가라기보단 내 삶이라는 영역을 넓혀 가는 지극히 사적인 탐험가. 그 누구도 대신 발견해줄 수 없는 것을 발견하고 모으는 수집가. 고단한 삶에서도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보겠다는 몽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