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괴롭히는 데 일가견이 있다. 대단한 전문가이자 숙련가다. 평생 갈고닦은, 가장 쉽게 그리고 빨리 자신을 괴롭히는 방법을 나는 잘 안다.
바로 '목표를 높게 잡고,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획한 일을 나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성공을 하지 못했으니 나는 스스로 나를 깎아내렸다. 지키지도 못할 목표는 욕심에 욕심이 더해져 산으로 가고, 완벽하지도 못할 거면서 완벽하려고 하는 오만방자함은 작심삼일은커녕 작심 일일도 지키지 못하는 코미디로 끝을 맺었다.
이쯤 되니, 정말 삶의 회의가 몰려왔다.
나는 내가 계획한 걸 지켜낼 수 없는 사람인 걸까? 그저 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사는 단순한 존재인 건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인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괴감과 지탄 섞인 질문들이 마음을 가득 매웠고, 언제나 무거운 마음으로 나는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주저앉은 나는 끝내 소비를 일삼는, 본능에 충실한 인간으로 변신한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 잠자와 같은 기괴하지만 고상한 의미를 머금은 변신이 아니라, 말 그대로 될 대로 되라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체중이 늘고, 게을러지고, 잠을 많이 자던 그때를 돌아보면 여지없이 계획한 것을 이루지 못한 그즈음이었다.
계획을 계획하기, 설령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목표를 높게 잡고, 완벽을 추구하면 나타나는 또 하나의 부작용이 있다.
이젠 아예 계획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걸 알게 되니 높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하루 이틀 시도해보는 게 아니라, 시도의 전단계 조차 하지 않는 것. 이 또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삶을 또다시 돌아보면 이루어지지 않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오늘의 나는 분명 그 어떤 성취를 발판 삼아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큰 걸 이루지 못한 걸 탓하는 게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이룬 걸 들여다봐야 한다. 들여다보고 음미하고 그것을 다름 아닌 내가 알아주는 것. 그래야 주저앉은 나는 힘을 주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
지나온 삶은 넘어짐의 연속이었고, 그러한 나를 다그치고 자괴하는데 몰두해왔다. 그러나 그래도 내가 해낸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힘이 났고 용기가 생겼다. 자괴감과 자책감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보다, 해낸 것들에 좀 더 집중했다.
그러자 무언가를 계획하는 일이 잦아졌다.
설령,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계획을 하자고 계획을 세우니, 뭐라도 해야 할 일이 생겨났다.
무의식 저 깊은 곳에 잊고 있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아무리 봐도 실천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것들도 그저 뻔뻔하게 썼다. 생각나는 온갖 잡다한 계획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뒤죽박죽 꺼내었다.
그때 알았다.
'질서'는 '뒤죽박죽' 속에 있다는 것을.
뒤죽박죽 뒤엉킨 그것들에게서, 나는 혼돈보다 오히려 안정을 느꼈다.
여기저기 흩어진 상념들을 모으니 패턴이 보였고, 그 패턴 안에는 내 욕망과 바람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또 다른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기획하고 해내고, 벌이고 수습하게 되었다.
계획을 지속하면 언젠간 실천이 된다!
나는 글을 쓸 때,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우선 제목부터 적어 놓는다.
그렇게 쌓인 제목이 수 백여 개에 이른다. 좋게 말하면 메모지만, 다르게 말하면 수 백여 개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못하는 모습으로도 해석이 된다.
그러나 재밌는 건, 나는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고 또 꾸준한 글은 바로 그 제목들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실천은 둘째치고 우선 계획하고 적어 놓으면 언젠간 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알고 나니, 나름의 계획법을 세우고 발전시켜 나아가고 있다.
첫째, 기록으로 남긴다.
우선 남겨야 한다.
눈에 보여야 하고, 손끝으로 계획을 토해내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록되지 않는다. '적자생존'은 '적는 자가 생존한다'라는 말로 비틀어볼 수도 있다. 내 안에서 나와 그것을 눈으로 보는 과정은 고귀하고 고결하다. 글쓰기와의 맥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나를 관통한 메시지엔 힘이 있다. 어딘가에 고여 놓는 게 아니라, 그 물꼬를 터주는 것이 바로 '기록'이다.
둘째, 매일 한다.
나는 언제나 노트나 메모지에 오늘의 할 일을 적는다.
예를 들어, 집에 돌아와 운동부터 글쓰기와 독서 어학 공부까지. 언제나 말 그대로 매일매일을 적는다. 그렇다고 적어 놓은 걸 다 실천하는 건 아니다. 어떤 날은 적어 놓은 것 하나를 하기에도 버거운 날이 있다. 그럼에도 매일 적는다. 글의 제목을 적어 놓고 나면, 언젠간 그 제목이 글이 되듯이. 매일매일 나는 적고 어느 하나라도 실천하려 노력한다. 중요한 건 '매일', '기록'하는 것이다. 조금 많이 뻔뻔해도 좋다. 하나도 지키지 못하더라도, 매일 계획하고 매일 적는 게 중요하다.
셋째, 두서없어도 좋다. 장황해도 좋다. 멋없고 예쁘지 않아도 좋다.
완벽주의는 과정과 결과를 가리지 않는다.
보통, 실천하는 데에 완벽함을 들이대지만 계획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는 계획부터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매일', '기록'하려면 완벽함은 철저히 버려야 한다. 멋있고 예쁘게 할 필요 없다. 노트에 휘갈겨 써도 좋고, 두서가 없어도 좋으며, 장황해도 좋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잡아가면 된다. 앞서 말한 대로, 질서는 무질서에서 나온다. 그저 꺼내어 놓은 내 마음의 파편들은 어느새 하나하나 각각의 퍼즐이 되어 생각보다 멋진 그림과 실천이 되어 가는 걸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 장황한 것 같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계획을 하게 되면, 어느새 그 '계획'은 '다짐'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많은 것들을 해내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게 아니라, 그 수 십 가지 중 단 하나만이라도 해내고 목록에서 지워 나가는 작은 성취감을 보면서.
자책하고 나를 다그쳐서 남는 건 헐렁해진 마음과 영혼이란 걸 이제껏 살아오면서 충분히 알게 되었다.
이제는 구겨진 마음을 조금씩 펴 나갈 차례다. 어느 하나라도 이루어냈다면, 스스로를 부축해 일어날 때다.
매일 계획하고, 매일 기록하고.
두서없이 적어가는 투박한 마음의 무질서는 언제나 나로부터 이고, 또 그것은 나를 위하고 있다.
'계획'안에는 나의 '다짐'이 들어 있다.
그 '다짐'들을 매일 꺼내어 놓고 반복하여 마주할 때, 어느새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글쓰기의 본질을 전하는 사람들, 팀라이트가 브런치 글쓰기 강의와 공저출판 프로젝트를 런칭 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주변의 글쓰기가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