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커피에겐 잘못이 없다. 유아적인 내 입맛이 문제다. 모든 유아들을 대변할 순 없겠지만, 유아는 대개 단 맛을 선호한다. 그러니 단 맛과 상극에 있는 쓴 맛의 커피는 내 기호 대상의 후순위인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커피가 필요할 때가 분명 있다.
그 순간들이 참 아이러니 한데, 크게 보자면 인생의 쓴 맛을 느낄 때와 이와 반대로 너무 달달한 걸 마주했을 때다. 직장인에게 커피는 생명수와 같다. 출근했다는 걸 믿을 수 없어 현실을 자각하는 타임에 쏟아부어줘야 하는 카페인과 쓴 맛은 오히려 위로다. 쓴 맛은 쓴 맛으로 다스린달까. 한 손에 들린 커피 한 잔이 그저 멋이 아니었단 걸,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커피를 찾을 땐 입 안이 너무 달달할 때다. 어느 정도의 단맛은 좋아하지만, 그 정도가 분명 지나칠 때가 있다. 카카오보다 설탕 함량이 더 높은 초콜릿이나 설탕 코팅이 가득한 빵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건 오로지 커피다. 이럴 때 머금는 커피 한 모금은, 지나친 단 맛을 단번에 제압한다. 언제 달달한 것을 먹었냐는 듯, 온 입안의 세포는 커피의 쓴 맛에 동화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맛에 빗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래서일까. 나는 삶이 초콜릿과 커피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맛과 쓴맛 외에도 많은 맛이 있지만 삶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비유를 제대로 해내는 것은 바로 이 두 맛이다.
삶은 마냥 쓸 수도 없고, 마냥 달달할 수도 없다.
첫맛이 쓴 칡뿌리도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이 나오는 것처럼, 쓴 맛엔 단 맛이 숨어있기도 하고 또 그 쓴맛 그 자체로 매력인 때가 있다. 달달함을 마구 머금을 때도 마찬가지. 첫맛은 온몸의 기분 좋은 호르몬을 모두 불러 모아 기분이 상승하지만, 그 지속력은 매우 짧고 너무 달면 불쾌함은 물론 이건 건강에 좋지 않을 거란 본능적인 불안이 찾아온다.
언제까지나 곤두박질치는 삶은 없다.
언제까지나 승승장구하는 삶도 없다.
삶의 씀 속에서, 삶의 달달함 속에서.
우리는 허우적대며 그 맛에 익숙해지거나 상반된 맛을 추구하게 된다.
그 부침이 어쩌면 인생 자체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되도록 그 둘을 함께 준비하려 한다.
한 손엔 커피. 한 손엔 초콜릿.
삶이 나에게 쓴 맛을 주든, 단 맛을 주든.
쓰다고 인상만 찌푸리지 말고, 달달하다고 마냥 취하지 말자는 내 의지라고 해두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