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고, 지금은 맞으나 그때는 틀릴 수도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 그러니까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언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이라 치부하며 화부터 내고 자기를 비하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결과'에만 집중하면 우리 삶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내가 어떤 잘못을 했거나 오해를 사게 되었다면, 우리는 기어코 다른 이에게 그 '과정'도 함께 봐달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그러한 긍휼을 허락하지 않는다. 선택할 때의 내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결과에 의거하여 바로 나를 속단하고 다그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어디서 배워 먹은 버르장머리인지 모르겠다.
선택할 때의 나 자신은 아마도 그것이 최선이라 여겼을 것이다.
또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미래와 그 결과를 두려워하며 온 몸을 떨며 그중 하나를 골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을 위로는 못해줄망정 다그치기만을 하는 나 자신은 과연 누구를 위한 나인가?
원래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면. 후회만으로 점철되는 삶이 아니라, 혹시라도 나쁜 결과가 왔다면 그것을 타산지석 삼거나 깨달음의 단초로 삼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쉽지 않지만, 그리해야 나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물꼬를 틀 수 있다. 그러하지 않으면 나는 아마도 평생 나를 괴롭히기만을 일삼을 것이 뻔하다. 지금까지도 그래 온 것처럼.
다시, 내 모든 선택은 완벽하지 않다.
그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할 때 나는 나를 좀 더 사랑해낼 수 있다. 나를 더 사랑해내야 나는 좀 더 잘 살 수 있다. 성공은 일확천금을 얻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더 잘 알아가는 것이며 끝내 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