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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4. 2021

요즘, 음악 틀고 빨래하는 시간이 너무나 좋다.

이런저런 삶의고단함을 머금은 내 마음일 수도 있으니

장국영 주연의 영화 아비정전을 보면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아마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음악과 함께 맘보 춤을 추는 장국영을 떠올리면 어디선가 그것을 보거나 들었던 기억이 날 것이다. 지금 세대에게도 그것이 연상될지는 미지수지만, '빰~빰빰빰빰빰, 빠바밤'의 전주와 함께 수많은 광고에서도 회자되었으므로 그래도 마냥 낯설진 않을 것이다.


맘보 음악은 신난다.

장국영의 몸에도 그 흥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가 춤을 추기 전 내뱉은 독백을 듣는다면 더 이상의 흥겨움은 사라진다.

흥겨움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곧이어 외로움이 들어찬다.


옛날에 다리 없는 새가 살았다.
이 새는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새는 날다가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이 새가 땅에 몸이 닿는 날에는 생에 단 하루 그 새가 죽는 날이다.


지금 나는 가족들과 떨어져 해외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가족들이 올 날은 저 멀리다.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이 나라의 언어조차 숙지하지 못한 채, 반 벙어리가 되어 지낸다. 업무 또한 낯설지만 오랜 직장생활을 해왔으므로 그 업무가 낯설다고 입 밖에 내지 못한다.


나는 닥치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금요일 저녁, 모처럼 만에 일찍 퇴근했다.

넓은 집 안에는 아무도 없다. 적막함이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래서 말인데, 외로움이 낯설지 않으니 재미 붙은 게 몇 가지 있다.

글쓰기야 원래부터 내 동반자였다고 치면, 요즘은 빨래하는 게 그렇게 마음의 위로가 된다. 몰라봐서 미안할 정도다.


빨래를 하기 전 나는 음악을 튼다.

음악의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라운지 음악부터 가요 그리고 클래식까지.


음악에 기분을 맡기며, 쌓여 있던 빨래를 끌어안고 세탁기 문을 연다.

빨래를 넣고 문을 닫고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넣는다. 세탁과 건조를 동시에 진행시키면 두세 시간이 걸리는데, 재밌는 건 이 시간엔 무얼 하든 보람차다는 것이다.


세탁기가 정해준 그 시간.

어쩌면 빨래에 저당 잡힌 시간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글쓰기를 해도 좋고, 잠시 운동을 해도 좋고, 잠깐 잠시 눈을 붙여도 좋고, 밀린 동영상을 봐도 좋다.


그러면서 문득 장국영의 맘보춤이 생각났던 것인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은 흥이 아닌 외로움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을 자는 새는 얼마나 외롭고, 또 얼마나 고단할까.


간혹, 아무도 없을 때 뭔지 모를 기분이 들어차 올라 요상한 몸짓을 할 때가 있다.

아비정전의 감독은 그것을 정말 멋지게 영화에 담아내었고, 장국영은 그 감정을 200% 이상 연기해냈다. 혼자 있을 때 문득 떠오르는 그 기분은 과연 진국이다. 농도가 매우 짙다. 

기쁨이든, 외로움이든, 슬픔이든, 벅참이든.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기분을 오롯이 느껴보는 건 삶에 꼭 필요한 어느 순간이라고 나는 믿는다.


외로움이 진한 그 순간, 그 농도만큼이나 나는 나 자신에 침잠할 수 있다.

세탁기 종료음이 울리면, 머릿속에 떠올랐던 장국영의 맘보춤은 사라진다. 빨래를 꺼내어 널어야 하는 시간. 건조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잘 펼쳐 널어줘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한 주 내내 이런저런 삶의 고단함을 머금은 내 마음일 수도 있으니.


그래서일까.

나는 요즘 빨래하는 이 시간이 너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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