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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16. 2021

요즘 나를 위로하는 것들

상처가 있기에 위로의 거리가 많아진다

사람은 참 묘한 존재다.

행복을 찾다가 오히려 불행을 맛보고, 절망 속에선 희망을 찾으려 한다. 불행하면 삶이 끝날 것처럼 말하지만 힘든 가운데에서도 기어이 위로를 건진다.


실오라기만큼의 희망도 없는 군대에서, 100km 행군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내게 위로가 된 것은 내무반의 내 침상이었다.

집도 아니고, 콜라도 아니고, 초코파이도 아니고. 단지 그저 내 침상 위 침낭 속에 들어가면 여한이 없겠다 생각했었고 실제로 살갗이 벗겨진 발바닥의 아픔을 뒤로하고 나는 꿉꿉한 냄새가 가시지 않은 침낭 속에서 곤히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요즘 내겐 주위 많은 것들이 위로가 된다. 가족을 뒤로하고 먼저 부임한 낯선 땅. 말이 통하지 않고, 일이 익숙하지 않은 이곳에서 나는 행복함보다는 다른 감정을 더 많이 느낀다. 그것은 두려움일 수도 있고, 불안함일 수도 있고 기대에 대한 부담감일 수도 있다. 불행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상황. 게다가 몇 개월 뒤에나 올 가족들을 기다리는 외로움을 추가하면, 행복과 그렇지 않은 감정의 저울 위에서 나는 행복의 반대편으로 기울고 만다.


위로를 건지기로 한다.

마음을 달래는 그 과정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잘 정돈해주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준다.


위로 1. 매그넘 아몬드 맛


야근을 마치고 텅 빈 집을 들어서면 적막함이 가득하다.

그 적막함에 맞서기 위해 나는 현관과 곧바로 이어지는 부엌으로 향한다. 냉동실엔 한가득 사놓은 매그넘 아몬드 맛이 있다. 중년의 중반을 넘어 당분을 멀리하곤 했었는데, 어쩐지 외로움은 당분을 끌어당기고 만다.


포장을 뜯고 나는 소파에 눕는다.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고민한다. 오늘은 겉에 둘러 싸인 초콜릿을 먼저 먹을까. 아니면 겉의 초콜릿과 안의 밀크 아이스크림을 동시에 먹을까.


그 순간 내게는 그 둘 중 하나가 세상 가장 중요한 선택이 되고, 그러는 사이 회사에서 있었던 고된 일들은 자연스럽게 잊힌다.

오드득 갈라지는 두꺼운 초콜릿 껍데기는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을 주고,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는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움은 역설적이게도 따뜻한 위로를 준다.


위로 2. 테니스


테니스는 쳐본 적이 없다.

스쿼시를 오랜 기간 쳐봐서 일까. 먼저 부임한 후배가 테니스를 함께 치자고 했을 때,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온 지 얼마 안 되어 모든 것이 낯설고 얼떨떨한 내게, 그 자그마한 공을 따라 이리저리 뛰며 땀을 흘리는 그 시간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공이 라켓에 정통으로 맞을 때의 손 맛.

넘어갈 것 같지 않던 공이 네트를 휘감아 넘어가는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공 하나에만 집중하면 되는 그런 존재였다. 거추장스럽게 달려 있던 낯섦과 걱정 그리고 근심은 내 몸에서 털려 나갔다.


물론, 테니스를 치고 난 뒤 얻는 근육통과 뻐근함의 그 무게는 상당하지만, 마음이 무거운 것보단 몸이 무거운 게 낫다는 그 자체가 내겐 위로가 되는 것이다.


위로 3. 김치찌개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언제나 와이프는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를 끓여 주곤 했다.

비행기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자마자 한국을 그리워하는 내게 그것은 크나큰 사랑이자 위로다. 그런 김치찌개를 집에서 해 먹게 되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장고 끝에 구한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식기가 없고, 김치도 없으니. 한국 식당을 찾지 않고는 김치찌개를 먹을 도리가 없었다. 식기와 김치를 구하는 데에 걸린 그 한 달은 내게 곤욕이었다.


마침내 마주한 손수 끓인 김치찌개는 그 온도 이상으로 내게 뜨거운 위로가 되었다.

잠시나마 한국 집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 감격을 나누고자 가족들과 통화하며 밥을 먹었다. 가족들과 통화하며 먹은 그 김치찌개 맛은 한 동안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이 외에도, 위로를 주는 것들이 많다.

글쓰기는 기본이고, 낯선 업무가 조금씩 익숙해지는 그 과정과 하나도 들리지 않던 스페인어가 몇 마디 들리는 그 순간 모두가 내게는 위로가 된다.


위로를 얻으려면 상처가 있어야 하고, 상처가 있기에 위로의 거리가 많아진다는 그 사실이 참으로 흥미롭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은 묘한 존재이므로, 그 흥미로움을 포괄하고도 남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문득, 나는 누구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인지를 돌아본다.

마음의 상처나 지난 내 삶의 고됨을 돌아보면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받은 그 위로의 온도를,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홀로.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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