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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21. 2021

피붙이가 주는 오묘함

그 감정 속엔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으니.

세상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간혹 있다.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데, 그것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그 알 수 없는 느낌은 꽤 오묘하다.


'오묘함'은 양가감정에서 비롯된다.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다는 욕구불만과 함께,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자각. 불만스럽지만 그 불만을 깨고 싶지 않다는 이유 모를 감정이 바로 오묘함의 핵심인 것이다.


하여, 살아가다가 뭔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한다면.

나는 그때가 삶에 있어 몇 안 되는 소중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요즘 내게 있어 마음이 오묘해지는 순간은 우리 아이들을 떠올릴 때다.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른다거나,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품을 수 있다는 내 능력 밖의 다짐을 보고 스스로 놀란다. 나는 '부모'란 페르소나를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였다. 아마 대부분 그럴 것이다. 부모가 되기 위해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니까. 사랑에 빠지다 보니 부모가 되는 수순이, 적어도 나에게는 더 맞는 설명이다.


결혼 전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에도, 내 목적은 2세가 아니라 아내였다.

그러다 사랑이 깊어지면 이 사람과 함께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남자와 여자라는 역할을 남편과 아내로 변화시킨다. 그것은 합의된 선택이다. 합의된 선택의 결과는 책임지기에 큰 무리가 없다. 그러나, 부모라는 선택은 이와 결이 다르다. 분명 합의되긴 하였으나,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되더라도 연애 때 했던 선택과는 그 결과가 사뭇 다르다. 인생 전체가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변화. 남편과 아내는 아빠와 엄마가 되고 상상하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피붙이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었다.

만약, 2세라는 인연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런가 보다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두 아이는 기어이 나와 아내를 아빠와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이제는 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어찌했을까란 탄식이 나올 정도다.

아이 없이도 그저 그런가 보다... 생각하자 했던 과거의 나는 소멸되고 없다. 그저 바라보면 배가 부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도 보이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벅차고 짠한 감정엔 조건이 없다. 그저 이 아이들을 위해 사는 것이 내 남은 생의 목적이 아닐까란 생각까지 든다.


나는 이 감정을 오묘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마냥 행복하지도 않고, 불만족스러운 것 투성이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들을 걷어내고 싶지 않다는 복합된 감정이 엎치락뒤치락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부족한 부분을 볼 땐, 혹시 그게 내 잘못은 아닐까란 생각에 측은하게 아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은 아마도 동물적인 반응일 것이다.

동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사랑'이란 감정을 개입시키고, 그 결과로 또 다른 사람을 만들어 낸다. 결국, 동물의 본성과 습성에 따라 이 과정은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억울하지 않다. 모든 동물이 그러하더라도, 똑같은 경험을 한 것 같더라도. 


'피붙이'는 내 고유한 경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오른 산이라도, 내가 직접 가보지 않으면 그 상쾌함과 풍경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철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이란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나이가 차서, 사회적 지위와 책무로 인해 어른이라 불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어른'이 되자고 마음먹는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짊어져야 할 어떤 고통과 역경을 겪게 되더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큰 우산과 방패가 되어주자고 마음먹는다. 이러한 나를 돌아보면, 조금은 철이 든 것처럼 느껴진다. 고로, 우리 아이들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묘한 감정은 이렇게 사람을 크게 변화시킨다.

나하나 밖에 몰랐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피붙이를 내어 놓고 얻게 되는 그 감정의 여정.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감정과 여정을,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 속엔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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