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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01. 2022

가방을 잊고 출근한 날

아마도 나는 간혹 가방을 잊고 집을 나설 운명인가 보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손에는 가방이 들려있었다.

그 시대의 직장인이었다면 가방은 필수였다. 간혹, 누런 서류봉투를 들고 다니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기도 한다. 목까지 차오르는 것도 모자라 목을 죄는 것만 같은 넥타이와 펑퍼짐한 양복바지 또한 그 시대의 모든 직장인을 대변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가방 또한 시대의 변화를 피해 갈 수 없었나 보다.

한 손에 들던 가방이 어느새 등으로 와있다. 등으로 가방을 메고 회사를 가면, 학교 왔냐고 비아냥 거리던 과도기의 시대가 있었다.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는데, 나는 그것을 확실히 기억한다. 학교에 왔냐는 그 비아냥을 들은 게 바로 나니까.


확실한 건 손에 들던 가방이 등 쪽으로 더 많이 왔다는 것이다.

더불어, 들고 다니던 많은 것의 기능이 휴대폰으로 들어가 있으니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고 보니 내 등에 있던 가방도 사무실 한 편에 쓸쓸히 놓여 있다는 걸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출장이나 어디 먼 곳으로 장소를 바꾸어 일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가방을 들고 다닐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오늘 아침, 출장을 다녀온 후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에 가방을 두고 나왔단 걸 깨달았다. 다행인 건 회사로 가는 차에 올라타기 전에 그것을 생각해내었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머리 하고는. 습관이란 참 무섭구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급하게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갔다.


나는 과연 언제까지 이 가방을 들고 다니게 될까.

아니, 들고 다닐 수 있을까. 평생을 회사에 있을 것처럼 힘들어하고 좌절하던 내 모습이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는 그 짧은 길에 주마등과 같이 지나갔다.


그래서일 것이다.

하루 온종일 '가방'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떠나지 않은 그 단어는 기어코 나를 책상 앞에 앉혔다. 뭐라도 쓰라며 나를 종용했다. 그래서 산만하게 퍼져있는 것들을 이렇게 하나하나의 단어와 문장으로 풀어가고 있다. 무엇을 이야기하자는 목표와 목적도 없이.


잠시 잊은 가방으로 인해, 생각해낸 것들이 더 많은 날.

아마도 나는 간혹 가방을 잊고 집을 나설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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