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과 속박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시간이다.
세상은 마치 둘로 쪼개어진 이데올로기와 같다.
빛 아니면 어둠. 좋음 아님 나쁨. 긍정 아니면 부정. 행복 아니면 불행.
쪼개어진 둘 중 하나는 대개 우리가 바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쏠려야 한다는 강박. 다른 한쪽으론 가지 말아야 한다는 속박. 강박과 속박이 난무하고, 그 난무함 속에서 삶은 찌걱이며 꾸역꾸역 굴러간다.
그중에서도 행복은 강박이다.
행복하지 않으면 삶에 의미가 없다고 믿는 정서가 가득하다. 반대로 불행은 속박이다. 그러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불안한 마음은 우리에게서 자유를 앗아 간다.
강박과 속박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이 생겨나는 것은 우리네 마음이지만, 그 마음을 건드리는 건 바로 타자(他者)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나약한 존재다. 없던 마음도 누군가를, 무언가를 보고 나면 마음이 요동한다. 내 것이 다른 것보다 작아 보이거나 덜해 보인다면. 강박과 속박은 곧바로 작동한다.
즉, 강박과 속박은 상대적인 것에서 온다.
우리의 집단 무의식은 상대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의식하는 정서. 공동체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지난날의 역사가 우리에게 남겨 놓은 유산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유산이 꼭 잘못되었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비교와 의식을 통해 우리는 성장할 수 있었다. 경쟁은 서로를 자극하는, 성장과 개선에 있어선 분명 필요한 양상이다.
그러나 비교가 거듭되면 자아가 옅어진다.
비교는 타자에 대한 욕망이며, 그 욕망을 욕망하다 보면 나 자신은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 '나'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페르소나에 내 본모습을 숨기고 살아가야 우리는 먹고살 수 있다.
행복과 불행은 사실 상반된 개념이 아니다.
공존의 개념이다.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는 것처럼. 둘로 쪼개어진 세상은 알고 보면 '유무상생'의 무엇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게 아니라 경계에 서야 한다.
행복과 불행의 공존 속에서 그 양쪽을 오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경계에 설 수 있고, 경계에 서야 행복이든 불행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받아들이려 하지 않거나, 어느 하나만을 추구하려 할 때 삶은 더더욱 늪 속으로 빠진다는 걸 이미 알았을 것이다.
행복이라는 강박, 불행이라는 속박.
어느 한쪽을 선택하더라도 강박이나 속박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삶의 진실은 경계의 면에 있다.
경계의 면은 중심이다.
그 중심엔 '나 자신'이 있다.
지금껏, 어쩌면 우리가 잊고 왔던 게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한다.
경계.
중심.
자아.
이제는 강박과 속박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