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의 인문학

먼지를 보며 떠올리는 그 무엇은, 평생 잊히지 않을 그 무엇일 것이다.

by 스테르담

청소는 먼지와의 싸움이다.

곳곳의 찌든 때는 강력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 흔적이 생각보다 쉽사리 사라진다.


더 강력한 건 먼지다.

그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어디에나 있다.
둘째,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을 가리지 않는다.
셋째, (아무리 닦아 내도) 또다시 쌓인다.


먼지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가설은 다양하다.

집안 먼지의 80%가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피부 세포란 말이 있지만, 유럽의 어느 매체는 그 주범을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라 밝혔다. 또는 카펫이나 이불, 옷 그리고 반려 동물의 털인 경우도 많다. 어찌 되었건 먼지는 외부 내부를 가리지 않고 우리와 기어이 함께 한다.


우리는 먼지라는 말을 하찮은 걸 표현할 때 많이 쓴다.

거대한 우주를 볼 때, 우리 지구는 하나의 먼지와도 같다는 표현이 그렇다. 그렇다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떤 의미의 존재일까? 먼지의 입도 범위는 0.001 ~ 1000μm(마이크로미터)이지만 70μm 이상의 먼지는 발생 즉시 침강하므로 일반적으로 70μm 이하의 먼지를 총먼지(TSP, Total Suspended Particle)라고 부른다. 아마도 누군가는 현미경으로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분명 체중과 중력의 힘을 빌어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있지만, 어느 누군가의 관점으론 부유하고 있는 먼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동시에, 대단한 존재로도 여기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대단함과 하찮음 사이에 있다. 아니, 그 두 개념을 넘어선 존재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대단해야 한다는 강박과, 하찮을지 모른다는 초라함에 대한 생각은 마치 고장 난 자동차 변속기처럼 이도 저도 움직이지를 못한다. 많은 시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먼지의 또 다른 속성 하나를 떠올려야 한다.

그것은 '자유'다. 어디에든 떠다니고, 어디에든 내려앉을 수 있는. 물론, 그것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그것이 자유라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네에게 당신은 자유롭냐고 묻는다면 과연 몇 명이나 흔쾌히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스럼없이 어디에나 있고,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을 가리지 않고, 누가 뭐래도 또다시 자신을 쌓아가는 먼지가 나는 부럽다.

이것은 먼지에 대한 동경이다. 하찮게 여기던 것에 감정을 이입해보면, 하찮은 것은 나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먼지는 나에게 하찮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 목소리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것은 바로 나에게로부터다.


우리는 먼지 없이 살고 싶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우리네에게 먼지는 하찮거나, 스멀스멀 삶을 방해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먼지를 마주하면, 나는 존재에 대하여 묻고 답한다. 하찮게 여기던 걸 하찮게 여기지 않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걸 대단하지 않게 생각하는 그 과정에서 나는 이전보다 나은 자유를 얻는다.


나는 오늘도 먼지를 닦아 낸다.

다시 만날 먼지와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먼지를 보며 떠올리는 그 무엇은, 평생 잊히지 않을 그 무엇일 것이다.

아무리 닦아내도 다시 쌓이는, 평생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무엇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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