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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25. 2022

아프지도 않은데 힐링부터 찾는 아이러니

'병명'은 없는데, '처방'만 가득한 시대.

힐링이라는 의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네요!"


아름다운 여행지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면 이와 같은 말이 떠오른다.

'안구정화'가 되면서, 동시에 '마음정화'까지 되는 느낌. 그러하므로 마음이 차분해지며 무언가 치료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내, 그곳에 있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누구는 이 아름다운 곳에 가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인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당장의 현실에 급급한 나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순간의 치료감은 저 멀리 달아나고, 이내 더 우울한 마음이 급습한다.


'그래, 나도 어서 힐링하러 떠나야지. 아니, 어디를 가지 못한다면 나를 위해 무어라도 해야겠어'

그리하여, 어딘가로 훌쩍 떠나거나 아니면 마음속 깊이 쟁여 놓았던 무언가를 무의식으로부터 꺼내어 구매한다. 평소라면 지갑 사정을 봐가며 해야 할 것들이지만, 어쩐지 이러한 때의 결정은 매우 빠르다.


이쯤 되면, '힐링'은 '의무'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의무감은 왜 생겨나는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힐링'보다 시급한
내 마음의 '상처' 찾기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힐링'에 앞서 규명해야 할 무언가. 그게 무얼까? 바로 '병명'이다.


즉, 나는 어떤 아픔이 있기에, 어떤 상처를 받았기에 치료가 필요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힐링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라는 습관에 사로잡혀 있다.

'빨리빨리'의 역효과다. 이 문화는 우리를 급성장하게 했지만, 무언가를 이룬 그 찰나에 우리네 '자아'를 돌보는 것을 잊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힐링'은 '어떻게'다. 어떻게 하면 이 아픈 마음을 빨리 다독일 수 있을까, 어디로 가면, 무엇을 하면 내 기분이 바로 좋아질까.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나는 왜 아픈가', '무엇으로 인한 상처인가'라는 '왜'를 물어야 한다.

방향을 모르고 뛰면, 정작 열심히는 뛰는데 결승선 반대로 뛰어가는 일이 발생한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도 모른 채, 그저 훌쩍 여행을 떠나면 힐링이 되는 걸까?


아프지도 않은데
힐링부터 찾는 아이러니


간혹 뜨끈한 국물을 먹으면, 술을 먹지도 않았는데 해장되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말 그대로 '느낌'이다. 따뜻하고 칼칼한 국물이, 한국인이라는 몸과 마음의 정서를 다독여 주는 것이다. 아프지 않아도 힐링받을 수 있다는 말이 성립되는 순간이다.


물론, 이유도 모른 채 태어난 것 그 자체가 아픔일 수 있다.

반복되는 날들과 불확실한 미래로 하루하루라는 일상이 벅찬 이유다. 이 모든 것 또한 '느낌'에 기인한다. 두려움과 불안함을 달래려면, 그 기분을 환기해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소비'다.


사람의 뇌 앞쪽에서 고주파 베타파가 나온다.

심장 박동은 분당 120회로 급격히 증가한다. 교감신경이 각성되고, 그 정도는 복권이나 마약을 흡입했을 때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증상이다. 이 반응은 피실험자의 머리에 센서를 장착하고, 구두 상점에서 대폭 할인된 한 브랜드의 구두 정보를 주었을 때 일어난 것이다.


원인이 아닌 방법부터 찾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빨리 기분을 전환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전환의 속도를 빠르게 바꿀 수 있는 건 바로 우리 뇌 속의 호르몬이며, 소비를 통해 즉각적이고도 강한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힐링'이라 말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속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한 카드사의 광고 카피는 사람들을 정말로 떠나게 했다.

광고가 집행된 해당 해에 여행자 수는 급격히 증가했고, 이것은 '힐링'을 대변하는 하나의 문화 트렌드가 되었다. (문제는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도 떠났다는 것...)


이것은 말 그대로 '광고'에 쓰인 '카피'다.

그 목적은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다. 카드 사용을 더 해달라.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먹고. 그러면 카드수수료는 많아지고, 회사는 이익금을 많이 벌어들일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원인을 모르고 힐링만을 찾는다는 생각이 들 땐,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있다는 걸 우선 깨달아야 한다.

더불어, 내 상처와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소비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병명을 모르고 처방하는 약은 위험하고, 그것은 몸은 물론 영혼의 아픔까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를 하더라도 알고 소비해야 하고, 약을 먹더라도 어디에 좋은 지를 알고 먹어야 한다.


'힐링'이라는 말을 검색어에 쳐보자.

무엇이 나오는가. 여행, 먹방, 구매, 지름. 무엇하나 소비적이지 않은 게 없다.


이것이 뜻하는 건 무엇일까?

'힐링'은 '돈'이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여행한 그곳에서 힐링을 얻었다고 해서, 내가 그곳에 가면 힐링이 될까?

누군가가 먹은 맛집에서 나는 힐링을 얻을 수 있고, 누군가가 지른 물건으로 나는 치유될 수 있을까?


그러할 수도 있고,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가진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내 아픔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건지라도.


'병명'은 없는데, '처방'만 가득한 시대.

'상처'는 모르겠고, '힐링'만 양산하는 시대.




'나는 힘드니까 이 정도는 써도 되지 않겠어?'란 말은 편향적 자기 합리화다.

열심히 일을 했든 안 했든, 내가 어디가 아프고 어떤 마음의 상처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저 떠나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진정한 '힐링'의 의미를 떠올릴 때다.

그 의미는 또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겨야 한다.


소비는 소비를 낳고.

소비를 부추긴 호르몬이 게눈 감추듯 사라지면, 허무함이 남을 뿐이다.


나를 채울 수 있는 소비.

무언가를 다시 생산해낼 수 있는 소비.

진정으로 내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다스려주는 소비.


힐링부터 찾는 게 아니라, 아픔의 병명과 원인을 먼저 찾는다면 현명한 소비와 의미 있는 생산이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자존감과 자기 효용감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되고, 힐링해야 할 일은 최소화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힐링법'일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하다.


'힐링'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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