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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9. 2016

가슴 뛰지 않아도 괜찮아

잊지 마. 우리 가슴은 뛰지 않은 적이 없었단 걸.

Hi,  젊음.

잘 지냈어? 정말 오랜만이지?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건데.

우리가 '시간이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걸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 지금 내가 그래.


아니, 우리 모두가 그럴 거야.

세상이 각박해져 가고만 있으니.


그래도 우린 젊음 답게 힘을 내야겠지?

우리 단 몇 분이라도, 맘의 여유를 찾아보자고.


잠시 눈을 감아봐도 좋고, 좋아하는 음악도 한 번 들어보고.


"헤이, 거기 젊음. 가슴 뛰는 일을 찾았나?"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젊음이라면. 그리고 그대가 신입사원, 중견 사원 또는 상사의 자리에 있는 젊음이라면. 한 번 돌이켜 봐. 내 어렸을 적 꿈이 뭐였는지를.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 지를.


갑자기 왜 묻냐고?

가슴 뛰는 일을 찾았나 해서 물어봤어. 그리고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왜 사람들은 말하잖아. '꿈 = 가슴 뛰는 일'이라고.


내가 큰 걸 걸 수는 없어도 밥 한 끼 걸고 이야기하자면, 아마 지금 우리네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자신 있게, "난 지금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다! 매일 매일이 설레고, 뛰는 가슴을 안고 일하고 있다."라고 말할 사람이 거의 없을 거야. (열 받고 흥분되어서 가슴 뛰는 그런 거 말고.)


왜 그럴까?

사실, 우리는 월급쟁이가 꿈이 아니었어. 아니었고 말고.

아마 각자 원대한 꿈이 있었을 거야. 물론, 어린이에서 어른이 돼가며 세상과 타협하고 때론 굴복하고, 사회 제도와 시스템에 압도되어 그 꿈에서는 점점 더 멀어져 왔겠지. 그리고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월급 받는 직장인이 되어 있을 거야. 물론, 요즘은 취업난이 장난이 아니니, 월급쟁이가 꿈인 젊음들도 많을 거고.


하지만, 취업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던 젊음들도 막상 직장에서 몇 년을 있어보면 회의감이 잦아들고, 가슴이 뛰지 않고 재미가 없고 내가 생각한 직장 생활과는 너무도 다르다며 퇴직을 하거나 의욕 없이 살아가기 일쑤지.


대체, 정말 이 세상에는 '가슴 뛰는 일'이 있기는 한 걸까?


"하고 싶은 일 vs. 해야 하는 일"


우리가 말하는 '가슴이 뛴다'라는 걸 극명하게 느꼈던 건 아마도 약 8년 전의 어느 때였던 것 같아. 그 당시, 나는 사내 록밴드를 만들어서 연말에 콘서트를 준비 중이었거든. 콘서트는 성황리에 끝났고, 그 당시 무대 위에서는 정말 가슴이 너무 뛰어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지. 아직도 그때의 '바운스'가 생각날 정도니.


왜 그토록 가슴이 뛰었을까?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난 그 콘서트를 정말 간절하게 하고 싶었거든. 좋아하고 재미있으니까. 즐거우니까. 그래서 준비도 연습도 주도적으로 즐기면서 했었지. 즉, 내가 하고 싶었던 거니까.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도 많았어.

우선 없는 시간을 쪼개서 연습을 해야 했고, 여러 가지 기획과 편곡 그리고 장소 대관부터 초대장 만들기까지의 자잘한 수많은 일들.


단 2시간의 콘서트를 하기 위해서 잠을 줄이고 돈을 들이면서 했던 그 수많은 일들은 물론 즐기기도 했었지만 모든 것을 즐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부분도 많았어. 즉,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해야 하는 것' 앞에서 지쳤던 것이 사실이야.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 중에도 이런 일이 생기는데, 우리 직장 생활은 더더욱 '해야 하는 것'으로 점철되어져 있지. 조금만 더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숨 쉬는 것 빼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곳이 직장이니까. 아니, 오히려 숨 쉬는 것도 상황 봐서 해야 할 때가 있을 정도로.


이렇게 '해야 하는 일'로 인해 우리는 점점 열정과 기력을 잃어가고 있는지 몰라. 아무래도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사람이 피동적이 되니까.


"'해야 하는 일'의 마법"


그런데 말이야.


언젠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돌이켜보니까 난 '해야 하는 일'을 통해서 성장해온 것 같다는 생각. 이건 아마 나뿐만이 아닐 거야. 모든 '해야 하는  일'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억지로 했어야 했다고 느꼈던 일들이 결국 내게 도움이 되었던 적. 그런 적 아마 다들 있을 거야.


어렸을 때 죽도록 하기 싫었던 부모님께서 시키셨던 책 읽기, 한자 쓰기, 받아 쓰기부터 상사가 시킨 엑셀 파일 정리나 기획서 작성 등. 대학 졸업하고 멋모르고 입사한 그때 엑셀의 '엑'자도 모르던 내가 어느덧 요리조리 수식과 함수를 돌리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 건 어쩌면 그 억지의 시간으로 인한 성장일지 몰라.


밤새 툴툴대며 작성하던 기획서는, 그리고 몇 번을 까이고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며 해야 했던 그것들의 시간은 내게 기획력과 논리, 그리고 업무의 꼼꼼함과 추진력에 도움이 분명히 되고 말았어.


그까짓 엑셀과 기획서가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말하고 싶어.

내 어렸을 적 꿈이 비록 월급쟁이 직장인이 아니었더라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직)업業'은 분명 내 인생의 일부분이고, 그 인생을 조금은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이야.


성인군자 같은 소리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야. 우리의 '지금'을. 우리의 '현재'를 좀 더 소중히 하자는 거야. '해야 하는 일'을 할 때도 말이야. '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저 흘려보내기 보다는, 내 인생의 일부분에 속한 그 순간들을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해보면 아마 더 큰 성장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그것이 '해야 하는 일'의 선물 또는 마법 일지도.


"가슴 뛰는 일만 찾지 말고, 가슴 뛰게 일해보는 건 어떨까?"


자 이쯤 되면, 나는 뻔뻔하게 이렇게 말해보고 싶어.

"가슴 뛰는 일만 찾지 말고, 가슴 뛰게 일해보는 건 어떨까?"

너무 변태 같은 말일까? 너무 이상적인 말일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일까?


어떻게 받아들여도 좋아.

다만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우리는 어쩌면 가슴 뛰는 일은 언제 나타날까, 또는 언제쯤 하게 될까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지 몰라.

세상에 계속 가슴 뛰는 그러한 일이 있기는 한 걸까? 아마 계속 가슴이 쿵쾅쿵쾅 거린다면 그건 분명 심장에 이상이 생긴 걸 거야.




자, 우리 지금 하는 일. 그리고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한 번쯤은 '가슴 뛰게' 일해보는 건 어떨까? 매일 매일이 아니라도 말이야. 우리 한 번쯤은 열심히 공부했을 그때. 그때 추억에 별빛을 바라보며 도서관을 나서던 때, 하기 싫었던 공부였지만 왠지 뿌듯하게 느꼈던 그때처럼. 나에게 주어진 일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주도적'으로 '가슴 뛰게' 한 번 해보는 거야.


'가슴 뛰는 일'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보단, 지금 해야 할 일을 '가슴 뛰게' 일해보는 것이 오히려 좀 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이지 않을까?


사실, 나도 항상 그렇게 하진 못하지만 단 하루라도, 아니면 단 한 순간이라도 해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온몸에 흐르는 에너지와 즐거움이 느껴질 거야. 매일 매일 그러지는 못해도, 그때 느낀 그 에너지로 또 얼마간을 버틸 수 있을 거야.


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꼭 믿어.

왜? 우린 젊으니까!


P.S


아, 그리고 잊지 마.

잘 알다시피 우리의 가슴은, 그리고 우리의 심장은 뛰지 않은 적이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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