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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07. 2022

밤 10시. 라면이 주는 위로.

삶이 고되면, 위로의 순간은 늘어난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둑어둑해진 하늘 아래였다.

문득, 별 보고 등교하여 별 보며 하교하던 고등학생 때가 생각났다. 가장 큰 열심으로 살아간다고 믿었던 그때의 생각은, 먹고사니즘을 이고 사는 '어른'이라는 관점에서 풋내음이 가득한 무엇이 되어버렸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았던 순간들. 그때만 지나면 무언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도 했었다. 그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긴 했지. 단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그렇지.


그렇다고 지금이 싫다는 건 아니다.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는 명제는, 그 이상의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 맞아. 가족이다. 각각의 남녀가 사랑을 하고, 부부와 부모의 역할을 잘 받아들여 멋진 팀워크로 이 각박한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간다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아이들 또한 보석 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걸 투덜대지 않고, 웃고 울며 시간을 함께 해준다는 건 눈물겨운 일이기도 하다. 중년을 한참 지나고 있는 때에도, 나는 철이 덜 든 것 같고 성숙해지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가득한데. 이러한 나와 함께 해주는 가족이란 존재는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가. 눈물을 운운하는 것이 주책은 아라는 이야기다.


마침내 집에 도착한 몸은 젖은 휴지처럼 묵직하고 눅눅하다.

삶은 마음이 두근두근한 일보다는, 몸이 천근만근인 일이 더 많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지친다.

우리는 마음을 좀 더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마음은 몸 안에 갇혀있는 무형물이다. 때론 정신과 마음으로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긴 하나, 그건 정말 간혹이다.


밤 10시에 이르러 나는 그런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따뜻하게 맞이해준 가족의 손길이 한차례 그 무거움을 덜어주었지만, 아무래도 무언가가 더 필요했다. 갑자기 허기짐이 몰려왔다. 따뜻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해외 바이어와 함께 하느라 이틀간 한식을 한 번도 못 먹은 몸의 수고도 떠올랐다.


결론은.

라면이다.


악마처럼 유혹적이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따뜻하고, 사랑처럼 충만한.

밤의 라면은 그렇게 거친 유혹이자, 보드라운 달램이다.


라면에 대한 생각은 낮과 밤이 다르다.

낮엔 건강과 다이어트를 생각하며 밤의 라면을 거부한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몸과 마음을 어루 달래준다는데 과연 이걸 마다할 수 있을까?


라면이 나를 유혹한 것처럼, 나는 아내를 유혹했다.

밤 10시. 두 개의 라면이 끓여졌고, 나와 아내는 라면을 사이에 두고 맞대어 앉았다.


쫄깃한 면발과 따뜻한 국물.

그리고 아내와의 이런저런 대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닿는 라면의 거리만큼이나, 그것은 가까웠다.


후회는 없었다.

살이 찔 수도, 속이 더부룩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얻은 행복의 크기 굳이 비교하자면 그 반대급부는 약소하고 또 약소한 무엇이었다.


삶이 고되면, 위로의 순간은 늘어난다.

위로를 얻기 위해 삶을 고되게 할 요량은 없지만, 고된 삶에선 위로를 쉽게 찾을 수 있단 이야기다.


밤 10시.

라면이 주는 위로.


'남편', '아빠'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그 힘을 바탕으로 기어이 앞으로 나아간다.

아주 잠시라도. 무겁다고 생각했던 그 어떤 것들 훌훌 털린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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