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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27. 2023

'빅데이터' 말고, '마이 데이터'

나는 누구보다 나에게 뛰어나야 한다.

빅데이터의 시대


디지털 시대엔 흔적이 남는다.

남은 흔적은 데이터로 환산된다. 환산된 데이터는 숫자를 넘어 의미를 생성하려 고군분투한다. 그것이 내어 놓은 값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명하려 든다. '나'라는 자아는 그렇게 데이터화되어 압축되고 분류된다. 대개 그것들은 상업화를 위한 것들이다. 한번 검색한 물품의 광고가 나를 따라다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 기세는 참으로 등등하다.


그 기세를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그 물건을 하거나.

둘째, 다른 관심사로 갈아타거나.

셋째,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돈 냄새를 가장 잘 맡는 기업들이 앞다투어 '빅데이터'를 얻으려 난리 치는 이유다.

그것은 흡사 총성 없는 전쟁과도 같다.


트위터에서만 하루 평균 1억 5,500만 건의 데이터가 생성된다.

유튜브의 하루 평균 동영상 재생 건수는 40억 회를 넘은 지 오래다. 글로벌 데이터 규모는 2.7 제타바이트를 넘어 2015년에 이르러서는 7.9 제타바이트로 증가할 것이란 예측이 있다. 1 제타바이트는 1,000 엑사바이트이고, 1 엑사바이트는 미 의회도서관 인쇄물의 10만 배에 해당하는 정보량이다.


빅데이터의 이면


이 시대는 마치 빅데이터만 있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빅데이터의 이면은 그리 정교하지가 않다. 어느 날, 휴대폰 지도 앱이 나에게 퇴근할 시간이라며 친절하게 그 시간의 교통상황을 알려줬다. 앱을 다운로드할 때 동의한 동의서와, 내가 출퇴근하던 시간대를 수집하여 도출해 낸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날 야근이라는 선고가 내려진 날이었다. 친절하게 알려 준 그 시간에, 나는 퇴근할 수가 없었고 알록달록한 교통량 정보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데이터였다.


한 편으론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판단하고 알려주는 그 정보가 나는 싫었다. 문명의 이기(利器)와 마음의 이기(利己)가 상충했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나를 아는 체 하는 빅데이터의 알고리즘에 홀려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는 척하다 보면 정말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빅데이터가 내가 남긴 흔적을 학습하고, 그 변화를 답습하면 정말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스스로를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알아보려 노력이나 했는가?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당연하다고, 아니면 자신은 알 수 없는 존재라고 그저 손 놓고 있던 건 아닐까?


디지털이 제시한 정보를 보며, 나는 아날로그적 소름이 돋았다.


나는 나에게 뛰어나야 한다.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더.


빅데이터의 시대라지만, 그 누군가가 또는 그 무엇인가가가 나를 더 잘 알게 내버려 두어선 안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누구보다 뛰어나야 한다. 그러하려면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 내면의 깊은 욕망과 감정을, 외면으로 확대되어 퍼지는 생각과 행동에 대한 데이터를 먼저 입수해야 한다.


내가 내 데이터를 수집하지 못하면.

누군가가 내 데이터를 생성하여 멋대로 해석해 버릴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리즘에 이끄는 대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어제 검색한 나이키 운동화는 글과 광고 그리고 영상과 SNS 콘텐츠가 되어 나를 에워싸고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나는 왜 나이키 운동화를 검색했는가?

이미 수십 켤레 가지고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찾아보았을까?

아, 어제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소비욕으로 풀고 싶었고. 그래서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단 욕구 발작 버튼이 눌려 직장인의 감정비용으로 마음의 짓눌림을 풀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내 마음을 바라보면, 나만의 데이터가 생성된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내 데이터를 형성한다.

그것을 생성하고 수집하고 활용한다. 글쓰기는 내 욕구와 욕망 그리고 생각과 감정을 잘 담아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쏟아져 나온 내 데이터들을 볼 때면, 스스로 놀라기 일쑤다. 아, 누군가 판단한 데이터가 아닌 내가 스스로 토해낸 데이터엔 이러한 정보가 숨어 있었구나. 나도 모르던 것들을 마주한 그 낯섦은 나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질적인 객관성이 된다. 이질적이어야 객관적일 수 있고, 객관적이어야 나를 3자의 눈으로 조망할 수 있다. 메타인지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빅데이터가 나를 엄습할 때.

나를 잘 안다는 듯이 어깨동무를 하려 할 때.


나는 내 데이터를 생성하려 글을 쓴다.

차곡차곡 모은 글은 이 세상 어느 빅데이터와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나만의 자산이 된다. 그 안에 묻어 있는 내 자아는 진짜이며, 나를 아는 척하는 어느 다른 데이터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흘린 흔적으로 내 모든 걸 판단하려는 빅데이터의 교만함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가까운 진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내 글들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그리하여 나는 운동화를 사는 대신.

마음을 달래며 글을 쓴다.


다시.

나는 누구보다 나에게 뛰어나야 한다.


빅데이터가 아닌, 마이 데이터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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