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Mar 14. 2023

회식이 끝나고 나면 왜 길거리에 동그랗게 모여있을까

동그라미라는 공동체

회식이 끝나고 잘 관찰해 보세요.

계산을 마친 사람이 마지막으로 식당 문을 열고 나오면, 필경 사람들은 삼삼오여 모여 있거나 동그랗게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겁니다. 이는, 특히 5인 이상일 경우에 빈번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난달에는 오랜만에 마감회식을 했는데요, 13명이 모인 우리는 역시나 식당 문을 나서 길거리 인도에 원을 그리며 모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니 비켜주자는 소리를 몇몇 동료에게, 몇 번이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재밌는 건,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원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지나가고, 심지어 어떤 분들은 원을 피해 도로로 둘러가기도 했죠. 그러니까, 꼭 원으로 모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형태와 모임에 익숙한 것이고 또 그것을 인정해 준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통행에 불편을 드린 송구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왜 회식이 끝난 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동그랗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습니다. 지난 20여 년간의 직장생활 경험과,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말이죠.


첫째, (불편한) 아쉬움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밥을 퍼주거나, 무언가를 나눌 때는 한 숟갈로 끝내지 말라고. 정 떨어진다고. 그래서 저는 지금도 무언가를 덜을 때, 꼭 한 번씩 더 주곤 합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정서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물론, 아쉬움이 커서 바로 2차로 향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건 그거고, 어찌 되었건 한 번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그 순간에 동그랗게 모인 사람들의 마음엔 아쉬움이라는 게 분명 있습니다. 심지어는 끝나자마자 집에 가고 싶은 사람도, 이미 앱으로 택시를 부른 사람도 원의 한 부분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식탁에서 '잘 먹었습니다'란 인사만으론 부족한 겁니다.

밖으로 나와 최종 인사를 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거죠. 아쉬움의 정체는 사실 '불편한 아쉬움'인 겁니다. 불편하지 않은 아쉬움을 품은 사람은 앞서 이야기 한대로 2차를 향해 가겠죠.


둘째, 쉼표를 마침표로


'아 배불러'란 말을 하며 식탁을 박차고 나온 사람들은 어수선합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지만, 아마도 각자의 머릿속엔 '아, 누군가 이 상황을 끝내주면 좋겠다'란 생각이 떠오르고 있을 겁니다.


이러한 상황을 마무리해주는 건, 호스트 또는 총무의 역할이죠.

호스트는 그 회식 모임의 직급/직책이 가장 높은 분을 말합니다. 총무라면 호스트의 지시를 받아 모임을 기획하고 주도한 사람이고요. 가장 훈훈한 마무리는 총무가 한 마디 하고, 마이크를 호스트에게 넘겨 훈화와 같은 말씀을 전한 뒤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직장인에게 애매한 건 질색입니다.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호스트든, 총무든. 아니면 둘 다든.


셋째, 다 전하지 못한 말


마지막으로, 누군가 저 건너편에 있어 전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사실,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회식 자리는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아는 차원에선 이러한 분위기가 분명 의미가 있겠으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을 때가 더 많죠.


자리가 파하고, 그제야 밖에서 몇 마디를 건네봅니다.

회식 자리가 끝났다는 안도감과, 이제 집에 갈 수 있다는 편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대화는 더 잘 이어집니다. 왜 형사들도 이러한 심리적 기제를 활용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딱딱한 질문을 다하고 막 돌아서려는 찰나, 아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요... 하면 용의자들은 숨기고 있던 것들까지 술술 풀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 원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세요.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네 집단주의적 무의식도 한 몫할 겁니다.

함께 회식한 사람들이니 미우나 고우나 공동체 의식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을 테고, 그러하니 식당 문을 나서도 뿔뿔이 흩어지는 게 아니라 한 번은 더 모이게 되는 거죠.


저는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몇몇 한국 사람과 그보다 더 많은 외국 동료들이 회식을 하더라도 회식 후에는 모두가 삼삼오오 모여 원을 이루게 된다는 겁니다. 한국 사람의 정서를 이 친구들도 알아주는 걸까요. 함께 원을 이루어 이야기를 나누는 얼굴들에는 역시나 웃음이 가득합니다.


동그라미는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은 공동체 그 자체입니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갈등하지만, 결국 각자의 월급을 챙기기 위해 그리고 서로의 월급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란 걸 알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죽도록 싫고 미울지언정, 내가 속한 공동체는 잘 되어야 하는 아이러니의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회식이 끝나면 왜 우리는 동그랗게 모이게 될까요?

사실, 우문 우답을 하기보단 그저 잠시라도 서로의 웃는 모습에 집중하며 어떨까란 생각입니다.


우문 우답은 이미 제가 했으니.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Q. 잦은 업무 실수로 긴장감과 죄책감이 커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