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여행은 또다시 시작될 수 있으므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강박적으로 짐을 푼다.
출장도 예외는 아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의 회기는 내게 있어 사뭇 진지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일상이 아닌 곳에서 일상으로의 회기. 때로 나는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인을 상상하기까지 한다. 그 정도로 나에게 그 돌아옴은 진지한 무엇이다.
일상을 떠나면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멀리서 바라보는 모든 건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좌절도, 시간이 지나 멀리서 바라보면 좋은 경험이었다는 것으로 미화되지 않는가. 때론 일상으로의 복귀가 버겁기도 하다. 들떠 있던 마음이 일요일 저녁이면 월요일을 앞두고 아픈 것처럼, 여행에도 기승전결이 있고 언젠간 끝이 있으므로 일상을 마주해야 하는 때가 분명 있다. 일상을 떠나기 위해 한 여행은, 결국 일상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여행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을 때에야 성립된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것은 방랑이자 이별이니까.
멀리, 오래 떠나 있으면 집이 그리워진다.
함께 떠난 아이들도 처음엔 생경한 것들에 감탄사를 발산하며 아드레날린을 끌어올리지만, 이내 며칠이 지나면 집으로 가고 싶단 말을 내뱉는다. 마침내 집 문을 열고 도착했을 땐, '집이다!'란 또 다른 감탄사를 내어 놓는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그리 달달한 것이 아니건만, 달달한 것으로 치자면 여행이 더 그러하건만. 일상을 떠나고 보니 그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참으로 비효율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일상이 지겨워 떠나고. 일상이 그리워 다시 돌아오고. 이 모순적인 감성으로 인해 여행은 산업으로까지 발전한 게 틀림없다.
이 비효율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을까.
나는 그래서 도착과 함께 곧바로 짐을 푼다. 일상으로 돌아갈 것은 나 자신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빨래할 것들, 기념품으로 사 온 것들. 집을 떠나며 제 자리를 잠시 떠나 있던 물건들. 모두 제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그것들이 안착했을 때, 난 비로소 일상으로의 회기를 실감한다.
여행의 추억은 도착이 아니라, 어느 버거운 일상을 맞이했을 때 잠시 떠올리는 게 더 낫다.
여행 후 곧바로 여행을 추억하는 건 미련에 지나지 않는다. 추억은 힘겨울 때에야 비로소 제 값어치를 발휘하는 법이다. 추억의 순간이, 잠시라도 몸과 마음을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 주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여행 후 짐을 곧바로 풀 것이다.
그것들을 하나 둘, 제 자리에 갖다 놓으면서 내 마음도 정리 정돈할 것이다.
정리정돈 되어야.
일상을 받아 들어야.
여행은 또다시 시작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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