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하루 명언>
목표도 없이 무언가를 하려는 건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그보다 더 어리석은 건, 목적도 모른 채 목표만 세우는 것이다.
by 스테르담
여기, 마라톤 선수가 있습니다.
유명한 코치에게 특훈을 받았습니다. 심호흡하는 법,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법, 근육 단련법, 걷기와 달리기를 병행하며 효율적으로 코스를 끝내는 법.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고, 연습하며 스스로를 단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라톤 대회에서 꼴찌를 하고 말았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결승선 반대로 뛰었던 겁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합니다만, 실은 이것이 우리네 실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왜'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에 혈안이 된 삶. 영어 점수는 높지만, 외국인과 대화를 하지 못하는 현실. '본질'은 '왜'에 있으며, '어떻게'는 본질을 찾아가는 수단임을 우리는 잊고 맙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적성은 둘째치고 의사가 되길 바라고, 부자의 품격과 지출에 대한 계획도 없으면서 돈부터 벌고 보자는 정서와 사상이 팽배합니다. 주객전도의 삶. 본말전도의 인생.
잘못된 건 아닙니다.
삶이 우리로 하여금, 본질과 이유 그리고 자아를 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삶의 역설은 여기서부터 피어납니다. '나'를 잊어야,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본질'을 잃고 나서야, '본질'을 추구하게 됩니다. 목적도 모르는 목표를 이루고 나서야, 허무함을 느끼며 그제야 목적을 떠올립니다.
'목적'은 '본질', '왜', '방향'을 뜻합니다.
'목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단계 단계의 수단(어떻게)이자, 이정표입니다.
목적을 잊고도 목표에 매진하는 건, 사회가 강요하는 이데올로기 때문입니다.
앞뒤재지 않고 무조건 열심히 하라는 강압, 대학부터 가고 보자는 강박, 남들이 다 하니 나도 해야 한다는 압박. 그러다 보면, 우리는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나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죽을 듯 말 듯 달려왔는데.
목표를 이루고 보니, '자아'는 없는 아이러니. '나 자신'이 없는 목표달성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 순간, 목적을 떠올려본다면... 과연 자신이 추구하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요.
앞서 언급한 마라톤 선수처럼, 열심히 잘 달리고 단계 단계의 목표를 이루었지만.
혹시 다른 방향으로 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떻게'에 혈안이 되면, '본질'과 '방향'을 잃게 됩니다.
그 둘을 잃는다는 건, 결국 '자아'를 잃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고 있는 방향은 어느 곳인가요?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며, 그렇게 살펴 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