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어떤 문장을 주워 먹을까.
평소엔 그저 그러했던 문장들이, 뒤통수를 때리거나 가슴팍을 후벼 팔 때가 있다.
그 문장들은 책 안에, 영화나 드라마 속에, 가족과 친구의 말에... 심지어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속에도 숨어 있다. 사랑 또는 이별을 해봤다면 이 말의 뜻을 좀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사랑 노래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이별 노래가. 내 마음을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그 모든 가사가 내 것이 되는 신비한 경험. 그것 말이다.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문장들은 버려진다.
당장 쓸모가 없는 문장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흘려 들었던 그 문장을 기어이 주워든다. 땅에 떨어진 건 먹지 말아야 한다는 걸, 어려서부터 알고 있지만 내게 필요한 말들은 얼른 주워야 한다는 걸 어른인 나는 새삼스레 알아버린 것이다.
사회생활을 얼마 하지 않았을 때.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상사가 너무나도 미운 적이 있었다.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걸까? 내가 싫은 걸까, 내가 일하는 방식이 싫은 걸까? 아니면 개인의 기분에 따라 그러는 건가? 내가 그렇게 모자란가? 내가 나가야 하나? 저 사람을 피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걸까? 피한다고 한들, 그보다 더한 사이코를 만나면 어떡할까?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을 잠재워준 건, 어느 영화 속 대사 한 줄이었다.
처음 볼 땐 몰랐는데, 두 번째 영화를 보며 그 대사가 내 뒤통수를 때리고 가슴팍을 후벼 판 것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일을 하는 것뿐이야."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중에서 -
나는 잽싸게, 이 문장을 주워 먹었다.
그렇네. 그런 거였네. 저게 상사의 일이었네. 내가 상사가 되어도 그럴 것이란 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관리자란 페르소나를 쓰면, 모든 게 허점투성이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그것을 바로 잡아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일 테니. 잔소리로 생각했던 걸 '조언'이라고 바꾸어 들으니, 정말 기분이 하나도(라고 하면 거짓말이고...)가 아니라 획기적으로 덜 상했다. 동시에 내 업무 역량은 일취월장했다. 주워 먹은 걸 잘 곱씹고 소화를 시키니 괜한 비타민 몇 개보다 더 영양가가 있었다.
생각보다 버려지는 문장들이 꽤 많았다.
몇 개만 잘 골라 주워도, 어쩌면 나는 내 삶의 추세를 지혜롭고도 더 크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또 어떤 문장을 주워 먹을까.
이것을 끊임없이 떠올리면, 어쩌면 나에게 그때 꼭 필요한 근사하고도 멋진 문장이 다가오지 않을까? 동시성이란 마법이, 나를 도와 어떤 문장을 주워 먹어야 할지를 그때그때마다 알려 주지 않을까?
주워 먹을 문장들이 어디에 있을지,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하며 마음을 열고 사방을 훑는다.
아마도 이제부턴.
그렇게 일상이 달리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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