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요.
- 유퀴즈 '아빠는 어떤 사람이에요?'란 질문에 답한 출연자 아들의 말 -
중년이 지나면 호르몬의 변화가 온다더니.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요.'란 그저 평범한 말을 들었는데, 어느새 내 두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눈물이 흐르지 않길 바라며 나는 기대었던 소파에서 고개를 잽싸게 들어 올렸다. 하늘을 향해 있는 두 눈에서, (의도한 대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진 않았지만 눈물은 (의도하지 않은 대로) 두 눈의 끝을 따라 양 갈래로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눈물 흘릴 일이야?
아무것도 아닌 단어를 몇 개 나열한 문장에?
어떤 말들은 너무나 평범해서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어떤 미사여구보다 더 강력해서, 그 말 그 자체로 감동이 된다. 슴슴한데도 맛있는 음식이 진정한 맛이듯, 늘 있는 일상이 그것을 벗어나 바라보면 감동이듯. 꾸미지 않은 직설적이면서도 1차원적인 말엔 무언가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아들은 아빠의 인생을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프로축구 심판을 하는 것과, 해야 하는 일을 위해 신문배달과 환경공무원을 병행하며 단 몇 시간밖에 자지 못하면서도..... 진심 어린 얼굴로 그는 행복하다 말했다. 왜 해맑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일하고 또 고생하는가 싶다가도, 나는 해맑지도 못하면서 제 코가 석자임을 떠올리고는 마음을 가다듬다가 그러한 아빠는 어떤 사람이냐는 말에 방심한 내 마음은 아들의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요'란 말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건 단순한 한 문장이 아니었다. 아들의 목소리는 떨렸고, 울먹이며 참는 눈물의 무게와 밀도가 느껴졌다. 거대한 물을 막아내고 있는 어린 아들의 눈물 보는 끝내 열리지 않았지만, 열리지 않는 수문을 대신 연 시청자들이 한가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고.
우리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야? 첫째의 대답. 목표한 게 있으면 이뤄 내는 사람이요. 둘째의 대답.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 그렇구나.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우물쭈물하거나, 그리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눈물보단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내게 남은 숙제는, 그렇다면 나는 어떤 아빠와 남편 그리고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다.
착하고 부지런해야겠다.
부지런하고 착해야겠다.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강력한 무엇이 될 테니.
꾸미지 않아도, 발버둥 치지 않아도 아우라가 빛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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