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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03. 2023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야 하는데요.
그런 다음 묘지란 전차로 갈아타야 하고…
여섯 정거장을 가면 엘리시안 필즈라던 데요.”


미국의 유명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인공 블랑쉬의 첫 대사다.

영화 제목이 강렬해서일까, 나는 ‘욕망’이란 말을 들으면 이 영화 제목부터 떠오른다. 영화의 결말은 파국이다. 욕망에 사로잡혀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몰두하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불행을 안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의 결말은 첫 대사에 이미 복선으로 깔려 있었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그다음 갈아타야 하는 역 이름이 바로 묘지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욕망은 부정적이기만 한 걸까? 욕망이란 말 자체에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다. 어감은 다소 부정적 일지 몰라도, 한 자 뜻 그대로를 해석하면 하고자 하는 것을 바란다는 의 미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욕구가 있다. 이 또한 하고자 하 는 것을 구한다라는 의미로 큰 차이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어로 그 둘을 살펴보면 차이가 보인다. Needs는 통상 욕구로, Desire는 욕망으로 번역한다. 위에서 언급 한 영화의 원 제목도 <A street car named desire>다.


욕구는 생리적인 충동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그 누 구도 마다할 수 없다.

수면욕과 식욕이 좋은 예다. 이건 참을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욕망은 생겨 난 욕구를 이루기 위한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욕이라는 욕구가 생겨났다면, 이것을 바라는 욕 망은 밥과 고기 같은 음식 이미지를 머리와 마음에 떠올 리고, 실제로 그것들을 추구하려 행동하게 한다. 영화 제 목을 따라 비유해 보자면, 욕구라는 레일이 깔리면 욕망이라는 전차는 그 레일을 따라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욕구가 생기는 건 잘못이 아니다.

식욕도, 수면욕도, 성욕도, 배변욕도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도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욕구를 어떻게 현실화시키느냐는 욕망이라는 전차를 어떻게 운전해 가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내게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욕망이라는 전차를 운전하고 있다. 우리가 지난날 해온 모든 행동과 선택들은 우리에게 생겨난 욕구나 욕망의 부족분을 채우려 하거나, 그것을 넘어서서 더 가지려 했던 마음의 결과다.


내 삶의 원동력 찾기

미국의 시인인 스탠리 쿠니츠는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첫째도 욕망, 둘째도 욕망, 셋째도 욕망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

우리네 사회는 개 인의 욕구와 욕망을 억압하고 드러내는 걸 터부시 해왔지만, 결국 그 욕구와 욕망들은 모든 시스템을 뚫고 나왔다. 이제는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스스럼없이 요구하는 시대 가 되었다. 이를 알아챈 여러 기업들은 이미 개개인의 욕 구와 욕망을 타깃 한 마케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샀다면, 내 마 음속에 어떤 바람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각 자의 욕구와 욕망을 추구하고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은 살아간다. 저마다의 레일과 그 위를 오가는 전차는 서로 교 차하거나 충돌한다. 사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타인 또는 가족과의 갈등이 생겨나는 이유도 각자의 욕구와 욕 망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욕구와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자 갈등의 씨앗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개인심리학을 주창했다.

그는 개인은 나누어질 수 없는 전체로 서 사회 내에서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 은 자신이 설정한 목표다. 아들러는 이 목표를 수립하는 근원을 열등감으로 풀이한다.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여 자기완성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하고, 결핍을 채워가며 성 장하고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열등감은 왜 생기는 걸까?

사람은 우월하고 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자아실 현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각각의 나누어질 수 없는 전체로 움직이며 무언가를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해냈을까?

아니면 이루지 못해 패배 감을 느끼고 있을까? 어쩌면 완성 여부를 떠나 삶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를 이뤘지만 마음 이 공허하거나 나를 위한 일이 아닌 것을 해내고 있는 걸까? 이런 사실을 깨달으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더불어 그 안에 있는 나의 욕구와 욕망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충동 적인 마음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내 마음과 대화하면서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 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고 싶은지에 대해 나눠야 한다.


지금 나는 어떤 레일을 깔고 있는가?

지금 나는 어느 방향으로 전차를 운전해 가고 있는가? 욕망이라는 전차의 다음 역은 과연 어디일까? 끊임없이 나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묘지는 종착역이 되어야지, 바로 다음 역이 되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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