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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04. 2023

불안은 지극히 논리적인 감정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1974년에 개봉한 독일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청소부로 일하는 독일 중년 여성 에미와 이민 노동자 인 아랍 청년 알리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동 거까지 하지만, 인종과 나이 차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시달리다 끝내 헤어진다. 편견으로 점철된 세상의 따가운 시선은 불안이 되었고, 그 불안은 끝내 현 실이 된 것이다.


불안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 만연화 된 공포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음식이 아는 맛인 것처럼 어쩐지 친근한 만연화 된 공포는 우리 삶을 기어이 흔들어놓는다. 그러나 불안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불안은 알 수 없는 일들이 내게 닥쳤을 때 심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렇다면 나는 불 안 앞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을까?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크게 두 가지 모습의 내가 보였다. 불안 앞에 주저앉는 나와 불안이라는 힘을 이용해 다음으로 나아가는 나.


에미와 알리는 불안 앞에 주저앉았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불안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던 내 모습과 같았다. 이러한 경험은 내게 다시 또 다른 불안이 되어 나를 위축시켰다.


반대로 불안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되기 도 한다. 나는 최진석 교수의 <장자 철학 강의>를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소리는 음표와 음표 사이에 있다’라는 말이었는데, 나는 듣자마자 무릎을 탁 쳤다. 안정되지 않은 음표의 이동이 소리와 음악을 만든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소리와 음악은 결국 불안에서 불안으로 넘어가 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음표 하나에 머물러 있으면 음악 은 나오지 않는다. 불안함을 딛고 앞으로, 다음으로, 높이 가 다른 음으로 나아갈 때 음악이 된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불안한 오늘이라도 주저앉지 말고 더 나은 내일을 다짐할 때, 내 삶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었다.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할 것인가, 불안을 딛고 다음 음으로 넘어가 멜로디를 만들어낼 것인가.

불안 앞에 주저앉지 않으니 비로소 내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불합 리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논리적인 감정이 바로 불 안인 것이다.


불안은 살아 있다는 증거


지하수를 퍼내기 위해 손잡이를 위아래로 움직여야 하는 펌프질.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의 낙차. 풍력 발전기를 돌 리는 고기압과 저기압의 결과물인 바람. 뜨거움과 차가움 이 만들어내는 증기기관. 그리고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음표와 음표로의 이동까지.


에너지는 결국 불안정함에서 온다.

지금까지 우리 삶을 움직이게 하고 지탱해 준 것은 불안이다. 불안으로 격렬하게 흔들리는 존재는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나는 이 사 실을 깨닫고 나서야 ‘불안 때문에’가 아니라 ‘불안 덕분에’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움직이지 않으면 굳는다. 머물러 있으면 잠식된다. 불안은 나에 게 자꾸 움직이라고 말한다. 꾸역 꾸역이라도 움직이는 과 정에서 삶의 에너지는 솟아난다.


이런 차원에서 불안이 던지는 질문은 꽤 묵직하고 의미가 있다.

불안은 자꾸만 내게 다음을 묻는다. 삶엔 끝이 없음을 불안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고3 때는 대학만 가면 끝일 줄 알았고, 대학생 땐 취업만 하면 끝일 줄 알았다. 그러나 돈을 벌고 있는 직장인이 된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2의 삶에 대한 걱정과 자 녀 교육 그리고 자아실현이라는 가볍지 않은 난제들로 하 루하루가 버겁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불안을 제법 에너지로 삼을 줄 알게 되었다. 등 떠밀리듯 사는 삶 은 어느 정도 불안정함에서 오는 삶의 에너지를 파도 타 듯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불안이 알려준 ‘끝이 없다’는 사 실은 매사에 끝장을 봐야겠다는 조급함을 내려놓게 했다. 대신, 답을 찾기보다는 문제를 발견하는 데 나는 더 주력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불안이 내게 던지는 ‘What is next?’라는 목소리가 생생하다.

불안은 내게 고여있지 말라고, 굳어있지 말라고, 머물러 있지 말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무탈하라는 말은 오히려 더 무섭다.

류성룡이 집필한 《징비록》에 이런 기록이 있다. 조선은 200년간 지속된 평화 때문에 온 나라 백성이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었고, 전쟁이 날 것이라는 위기감이 없었기에 왜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는 내용이다. 잦은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위기는 고통스럽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징비록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해하지 말아야지, 불안을 없애야지,라고 생각을 많이 해왔다.

돌이켜보니 이는 무탈하자라는 말과 닮아 있었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 생각을 해왔는지, 그리고 이 러한 생각으로 얼마나 많이 나를 괴롭혀 왔는가. 해내고 싶었던 것을 해내지 못했던 그때를 돌아보니, 불안을 제 거하려는 속내가 가득했음을 깨닫는다.


불안을 막연하게 바라볼 때 우리는 그 공포에 압도당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다. 막 연하게 보면 그것은 자라이고, 자세히 보면 그것은 솥뚜껑이다. 불안하여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는, 그 실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 실체 안에는 불안의 본질이 숨어 있으며, 이것은 가만히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에너지가 된다. 이제 나는 불안이 던지는 질문에 꽤 익숙하다. 무엇을 이루고 난 뒤에 오는 허탈함과 불안은 오히려 스스로 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나보다 더 지극히 논리적인 불안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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