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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01. 2023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리는 나이

간혹 혼자 있는 거실에서 노래를 듣는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하고 앉아, 잠시 어떤 노래를 들을까 고민한다. 노래를 고르는 사이 그 적막함이 나는 좋다. 스피커와 나 사이 조금은 어색한 그 순간 또한 멜로디와 리듬이 되어 마음을 어루만진다. 세상 모든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맘껏 분풀이를 하다 제풀에 꺾인 아이마냥 나는 온순해진다. 조용한 음악이 듣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스피커에선 아델의 'Someone Like You'가 어느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저 몇 번 스쳐 들었던 노래인데, 나도 모를 어떤 감정이 마음속 DJ가 되어 그 노래를 선택했는가 보다.


표면적으론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하지 못할 사랑에 대한 한탄인 것 같지만. 어느새 나를 스쳐가고, 내가 스쳐갔던 모든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를 떠나간 사람들, 내가 떠나온 사람들. 면면에 있어 인연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사람들도 있었고, 인연보다는 악연이라 칭할 사람들도 여지없이 떠올랐다.


너와 같은 사람.

당신 같은 사람.


누군가는 나에게 사랑을 가져다주었고, 또 누군가는 나에게 상처를 듬뿍 안겼다.

사랑과 상처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그 둘을 동시에 준 사람들도 있다. 재밌는 건, 상처를 주다 사랑을 준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 대개는 사랑을 주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사랑이 상처로 돌변하여 내게 박힌 가슴에 물어보면, 그 상대방에 대한 모멸과 수치 그리고 분노와 원초적인 미움은 잊히질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기억은 또렷해도 그때의 느낌은 어스름한 새벽녘 안개와 같이 흩뿌려지니, 또다시 사람에게 기대는 몹쓸 습관과 운명에 나는 놀아나고 있음을 그저 깨닫고 만다.


누군가에겐 고맙고.

누군가에겐 미안하고.

누군가는 주는 것 없이 밉고.

누군가는 주는 것 없이 좋고.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누군가로부터 받은 위로를, 또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문득,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을 즈음 아델의 노래는 끝나가고 있었다.


Sometimes it lasts in love.

But sometimes it hurts instead.


사랑으로 남거나, 아니면 상처가 되거나.


어쩌면 우리는 사랑과 상처의 반복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희망에서 절망으로 추락하는 걸 반복하는 것처럼. 무엇 하나에 집착하려는 우리네 모습을 비웃듯, 신은 우리 바람과는 무관하게 동전 뒤집기 놀이를 하고 있는 듯하다. 동전이 되어 날아간 내가 바닥에 떨어질 때 내어 보일 모습은 앞면일까, 뒷면일까. 희망일까 절망일까. 사랑일까 상처일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파르르... 여전히 공중에 떠 돌고 있는 동전이 아닐까.

영원히 바닥에 닿지 않을 그 기세로.


눈물이 흐른 사이, 어쩐지 마음은 고요해지고 정리되지 않은 몇몇 인연이 편하게 잊히기 시작했다.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리는 나이.

노래가 끝난 그 적막함을 그대로 안고 얼마간을 나는 잠시 더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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