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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5. 2023

일상 속 행복의 순간들

"저녁 먹었어?"
"아직"
"그럼, 오늘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금요일.

예상보다 일찍 일이 끝나는 날이면, 나는 급히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몇 시에 일을 마칠지 몰라 막연하던 마음은 일의 끝이 보이는 순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바뀐다. 직장인이라는 신분에 툴툴대긴 하지만, 그래도 직장인에겐 금요일이라는 기대와 주말이라는 휴식이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마음 불편한 주말도 꽤나 있고, 때론 주말 출근도 해야 하지만... 직장생활을 전쟁터에 비유하면서도 그 둘이 확연하게 다른 건 주말이라는 어느 정도는 보장된 휴식이니까.


금요일은 피로가 누적된 어느 한 날이다.

승모근부터 뒷 목까지 꽉 차오른 피로는 어서 집에 가 잠이나 자라고 종용하지만, 기분이라는 또 다른 내 자아는 간만의 여유를 그냥 보내기가 싫은가 보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본능이 솟구쳐 올라, 아무리 피곤해도 기어이 시간을 잡는다. 운전하며 돌아가는 길에 아주 잠깐 후회라는 녀석이 고개를 슬며시 들 때도 있지만, 어림없는 소리...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걸 먹고 한 주간의 대화를 나눌 기대감엔 후회란 녀석이 끼어들 데가 없다.



또 다른 어느 날은, 가족을 위해 요리한다.

요리라고 해봤자 대단한 건 아니고 고기를 굽거나, 라면을 끓이거나... 김치볶음밥을 하는 정도다. 회식을 하며 누군가 나에게 아들만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고기 자르는 크기를 보니까 알겠어요. 크게 자르시는 거 보니..." 딸 둘 아빠의 말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큼지막하게 구운 등심이나 삼겹살을 좋아한다. 크게 잘라 한 입에 넣어 입안에서 터지는 육즙이 일품이라며 아이들은 입안 가득 고기를 넣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물론, 아내를 위해선 한번 더 고기를 자르는 성의를 보인다. 내 여자는 내가 챙겨야 하니까.



밥을 차리면, 소파에서 굳이 내려앉아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소파는 등받이로 변신하고, 저 멀리 있는 식탁이 야속하다는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나는 TV를 켠다. "무얼 볼까..." 밥을 먹으며 TV를 보는 게 좋지 않다는 건 누구라도 안다. 미디어는 참 재밌고도 아이러니하다. 밥을 먹으면서 TV를 보는 건 좋지 않다고 미디어가 말해 주었으니. 그럼에도 굳이 TV를 트는 건, 가족들과 함께 하는 - 보고, 즐기고, 맛보고, 이야기하는 - 시간이 좋아서다. TV는 대개 교양 프로그램 또는 영화 해석에 관한 프로그램을 트는 데, 맛있는 걸 함께 먹으며 나누는 대화가 나는 참 좋다. 해석의 거리가 많고, 각자의 의견을 나누기가 좋은데 이건 또 하나의 반찬이 되어 밥상을 더 풍성하게 한다.



식사를 하고, 간혹 우리는 후식을 밖에 나가 먹는다.

고르는 재미가 있고, 함께 걷는 시간이 좋다. 무엇을 먹을까는 순간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 각자의 의견을 내어 놓는다. 어느 날은 모두 같은 걸 먹고, 또 어느 날은 아예 각자의 것을 찾는다. 각자의 것을 먹을 때, 맛이라도 보라며 건네는 한입이 나는 참 좋다. 요즘 세상엔 가족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달달한 무언가가 입 안으로 들어와 몸속으로 퍼지면, 그만큼 나른하고 기분 좋은 것도 없다. 소소한 구원은 일상 속 어디에든 숨어 있고, 가족들과 함께라면 조금은 더 자주 그것을 찾아내곤 한다.




일상 속엔 분명 행복이 도사리고 있다.

일상이 주는 확실한 고단함이 주를 이루고 있더라도 말이다. 나에게 있어 행복의 선명함은 가족과 함께 할 때 더해진다. 글을 쓰는 순간도 그렇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글을 쓰는 시간. 이것이 없다면, 삶은 온통 고통으로 둘러싸이게 되지 않았을까를 내내 생각한다.


행복은 절망이 바탕이 될 때 더 분명해진다.

절망이 없다면 행복의 정도도 없거나, 있더라도 덜 할 것이다. 행복은 동시에 순간을 지나가는 무엇이다. 그 순간을 잡아채지 못하면 행복의 정도는 작아진다. 또 하나 주의 해야 할 것은 그 '순간'에 매료되어, 그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에 집착한다는 건 약물 중독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순간'은 지나가는 것이며, 지나가야 하는 건 지나가게 두어야 한다. 그것을 잡으려 손아귀에 힘을 주면, 그 경련은 온몸으로 퍼진다.


일상 속 행복의 순간은 순간으로 그대로 두기.

순간을 잡으려 하지 말기.

순간에 집착하지 말기.


그러다 보면, 행복은 어느새 그렇게 일상 속에서.

나에게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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