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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14. 2023

10년 만에 연주한 드럼 (feat. 강남 스타일)

드럼이 내 마음을 빼앗아간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누군가 드럼을 치는 것을 직접 들으며, 온몸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묘하고도 제어할 수 없는 이끌림이 온 세포를 일깨웠다. 피부가 곤두서 소름 돋듯, 나는 세포들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었다.


'드럼을 쳐야겠다.'


결심한 바와는 다르게, 당장 드럼 칠 곳이 없었다.

나는 우선 드럼 스틱을 사서  베개를 정렬시켰다. 당시엔 인터넷도, 검색창도, 유튜브도 없었기에 기억 속 그대로 베개들을 정렬시켰다. 그리곤 우선 두들겼다. 생각했던 소리가 아니다. 두들기는 것이 곧 드럼 연주라고 오해한 탓이다. 악기엔 주법이 있다. 치는 법을 알아야 음악이 된다. 특히나 드럼은 음악이 되지 않으면 소음이나 다름없는 악기다. 이후엔 TV에 나오는 모든 음악프로그램들 속에서, 나는 드럼 연주자를 찾아내었다. TV를 보며 어느새 내 손과 발은 리듬에 맞추어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덧 베개에서도 박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당시 슈퍼에 팔던 레모나 철판 박스를 개조해 심벌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베개와 철판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지나지 않았던 추억이지만, 당시엔 그 어느 드럼도 부럽지 않던 나만의 커스터마징된 (한정판) 드럼이었다.


실제 드럼을 마주하고 연주한 건 그로부터 약 6개월 뒤였다.

목사님 아들이었던 한 친구가, 내 열망을 읽기라도 했듯 나를 교회로 데려가 주었다. 큰 예배당에 7 기통 드럼이 심벌 4개와 함께 있었다. 가슴이 설레었다. 아니, 폭발할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내 스틱을 꺼냈다. 베개만 두들기던 스틱이 하이헷과 스네어 드럼을 건드리니, 스틱 그 조차 전율이 이는 듯했다. 나는 미친 듯이 드럼을 쳤다. 스틱도 미치고 나도 미쳤다. 그 처음의 드럼 연주를 나는 잊지 못한다.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15년 간 독방에서 머리로 상상하던 싸움의 기술에서 현실에서도 통했듯, 베개로 연주하던 내 드럼 연주도 실제가 되었다. 나를 바라보던 친구가 박수를 쳐줬다. 그 친구는 내 드럼 연주의 첫 관객이기도 했다.


이후 나는 여러 곳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군대에선 일요일에 교회에서 연주를 했고, 직장에 들어가선 직장인 밴드를 만들었다. 홍대 클럽을 통째로 빌려 콘서트를 하기도 했고, 2만 명이 넘는 행사에서 오프닝 무대를 서기도 했다. 2013년 겨울엔 처음 해외 주재원이 되어 참석한 해외 법인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얼떨결에 밴드와 함께 즉석 협주를 하기도 했다. 유럽 법인 친구들은 내 이름을 아예 '드러머'로 불렀다. 얼굴은 알렸지만 이름을 알리지 못한, 아니 다르게 알린 재밌는 일화다.


부터 10년.

나는 현재 두 번째 해외 주재 생활을 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에서. 여지없이 12월엔 연말 파티가 열린다. 마침 밴드가 온다길래, 드럼을 연주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딱 한 곡만 허락을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두 번째 곡부턴 돈을 받는단다.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곡이면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 곡이라... 무슨 곡으로 할까. 그러다 내린 결론은 역시나 '강남 스타일'이었다. 더 멋진 곡(?)을 연주하고 싶었지만, 다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곡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모두가 즐겼다. 10년 간 봉인 된 드럼 연주도 그날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춤을 추었다. 리허설 조차 하지 못했지만, 음악은 만국의 공통 언어라서 그런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작과 끝은 약속한 듯 완벽했다. 건반, 기타 연주자들도 상당히 놀란 눈치다. 보다 즐거운 건 관객이 된 우리 동료들이었다. 스탠딩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열기는 모두의 것이었다.


10년 만에 드럼을 연주했더니, 그것도 한 곡에 지나지 않는데 이후 온몸이 결렸다.

오랜 시간 후의 연주와 처음 맞추어보는 밴드와의 협주로 긴장을 하긴 한 모양이다. 어찌나 힘을 들여 쳤는지, 팔이 후들렸고 베이스 드럼은 몇 십 센티가 앞으로 나아가 있었다. (연주 도중 밴드 드러머가 다시 내 쪽으로 드럼 전체를 밀어줄 정도로...)


드럼을 처음 마주한 30년도 더 지난 그 첫 열정과 전율이 떠오른 날. 10년 만에 다시 드럼 스틱을 잡고 동료들과 즐겁게 노래 부르고 춤췄던 그날.


무얼 하며 사느라 그 좋아하는 드럼조차 10년 만에야 칠 수 있었던 건 지를 한탄하며, 그럼에도 신나고 즐겁게 드럼을 다시 마주하고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온 것에 감사하며. 나는 다시 동료들과 관객석에서 만나 서로의 일 년을 격려하 춤추 그 시간을 만끽했다.




그래서.

글의 마무리는 드럼 마무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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