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오후 한 시.
담배를 문 채 바라본 하늘색은 이미 잿빛이었다. 라디오에선 지구 멸망 전 10분을 알리고 있었다. 연기를 한껏 뿜었다. 담뱃갑에 선명히 인쇄된 썩어가는 폐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우주의 먼지가 되어 죽을 몸뚱아리.
목성 공포증이 현실이 될 줄이야. 목성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거대한 것에 느끼는 두려움은 참으로 압도적이다. 온몸과 정신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예측할 수가 없다던 뉴튼의 말이 오만이 되는 순간이다. 계산은 개뿔. 갑자기 지구로 죽자고 달려드는 목성의 움직임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래서 내가 수학을 싫어했던 거야. 수학 좀 한다고 밥 하는데 써먹을 수도 없고, 고차원적으로 계산을 해도 틀리면 그만이니까. 그 잘난 과학자라던 사람들은 왜 이걸 예측 못한 걸까. 수학을 뛰어넘는 존재 또는 법칙이 있다면, 수학은 그 얼마나 무용(無用) 한 것인가.
신기하게도 재난 영화의 법칙처럼 통신이나 인터넷이 끊기진 않았다.
사람들은 길거리 곳곳에 서서 갑작스럽게 맞이한 10분이란 시간을 누군가와 통화하는데 쓰고 있다. 큰 소리로 우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그 어찌나 해대는지. 아니, 평소에 사랑한다고들 하지. 왜 목성이 공포스럽게 다가와 지구를 집어삼키려 할 때가 돼서야 이리들 유난을 떠는지. 평소에 하지 않았다면, 죽는 그 순간에도 아무 말 말 것을. 하긴, 목성을 갑자기 지구로 보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존재가 사람을 그렇게 설계해 놓은 것이니, 뭐 이상할 것도 없겠지.
어느덧 부재중 전화는 50통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 어느 연락도 받지 않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목성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찍은 사진을 바로 SNS에 올리는 아이들. 어른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지. 목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신기하거나 멋진 걸 보면 사진 찍어 올리는 SNS라는 습관의 관성일까, 아니면 어차피 죽을 목숨 무언가라도 기록하고 떠나려는 무기력한 체념일까.
어제는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뵀었다.
차려주신 밥을 맛있게 먹었다. 오늘 목성이 눈앞에 있다. 밥을 맛있게 먹은 게 이리도 보람이 될 줄이야. 어머니 손은 참 크다. 김밥도 볼이 불어날 정도로 크게 써신다. 우걱우걱 먹어야 하는 어머니의 김밥이 나는 참 좋다. 명절 때 싸주시는 동그랑땡도 마찬가지다. 다른 집 동그랑땡이 마카롱이라면, 어머니의 동그랑땡은 뚱카롱이다.
차들은 도로 위에 엉켜 요지부동이다.
체념한 사람들이 하나 둘, 차 위로 기어오른다. 목성이라는 거대한 공포는 이제 어느덧 관전 포인트가 되었다. 실상, 공포는 무언가가 일어나지 않을 때 극대화 된다. 사람이 비겁해지는 이유는 상상을 하기 때문이니까. 그러나 눈앞의 목성은 일어나지 않을 일도, 상상도 아니다. 현실이다. 단지, 믿고 싶지 않은.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꿈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이것은 주인공이 움찔할 꿈이었겠지.
이제, 1분 남았다.
은하계가 뒤죽박죽 되는 일과, 우주의 먼지가 될 인류.
나는 존재하는 일체는 아니다. 나는 허무와 싸우는 생명이다. 그러니, 나는 허무는 아니다. 허무를 연료 삼아 타오르는 불꽃이다. 나는 영원한 싸움이다. 이 싸움의 끝이 멸망일지라도.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영원히 싸울 준비가 된, 자유로운 의지라고.
쿠궁,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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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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