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가 절대 고장 날일이 없을 그곳으로 말이야.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 제가 잘못했어요. 게임기는 정말 제가 고장 낸 게 아니에요.
엄마.
무서워요. 배고파요. 목말라요. 아까 제가 좀 더 큰 여행가방에 갇혔을 때, 그때 제가 소변을 잘 참았다면 보다 작은 지금 이 가방에 갇히지 않았겠죠?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참았어야 했는데.
엄마.
아파요. 지금 가방 위에서 뛰고 계신 거죠? 저 정말 아파요. 아... 뜨거워요. 이 작은 공간에 뜨거운 헤어드라이어 바람도 들어와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내보내 주세요.
엄마.
엄마? 아, 외출하셨네요. 지금은 이복남매가 저를 감시하고 있어요. 엄마가 꺼내 주지 말라고, 혹시라도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잘 보라고. 그렇게 저를 지켜보라고 하셨대요. 엄마는 지금쯤 친구분들과 소주 그리고 고기를 드시고 계실 거예요. 왜인지는 모르지만 제게는 보여요. 엄마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엄마.
제 몸무게는 23kg이잖아요. 또래 평균보다 한참 못 미치는 몸무게라고 사람들이 그랬어요. 엄마 진짜 아들인 제 형제는 40kg이 넘고요. 그나마 제가 말라서, 그나마 이렇게 가방 안에서도 조금은 숨을 쉴 수가 있나 봐요. 그런데, 이제 숨 쉬기가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어요. 언제 오세요. 어서 좀 저를 꺼내 주세요.
엄마.
얼마 전에 엄마 아빠가 저를 때렸다고 경찰서에 함께 갔을 때. 경찰 아저씨 아줌마들이 저에게 물었어요. 집에 다시 가고 싶냐고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정말 집에 가고 싶었거든요. 머리에 생긴 2.3cm의 찢어진 상처도, 온몸의 멍자국도. 저는 괜찮다고 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에게, 엄마 아빠와 떨어진다는 건 그 무엇보다 무서운 무엇이에요.
엄마.
이젠 정말 숨 쉬는 법을 잊었어요. 어떡하죠. 잠이든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숨이 막히지 않아요. 아프지 않고, 왠지 마음이 편안해요. 몸도 가벼워졌어요. 어쩌면 눈을 뜨지 않고 잘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10년. 기억이 나기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제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요. 삶은 참 꿈만 같아요. 삶은 참 짧은 것 같아요. 제가 어려서 더 그런 거겠죠?
엄마.
전생에 저와 엄마는 무슨 인연이었던 걸까요. 어떤 사이였길래, 이곳에서 우리는 좀 더 행복하지 못한 사이가 되었을까요? 엄마에겐 어떤 스트레스가 있던 걸까요? 유치원 버스에 홀로 남겨져 죽은 아이의 뉴스를 보며 분노의 댓글을 달았던 엄마가, 왜 저에게는 이러시는지. 어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려서 모르는 건지, 몰라서 어린 건지...
엄마.
저는 좀 잘게요. 고통이 없으니 잠이 쏟아져요. 화가 풀리시면 저를 좀 꺼내 주세요. 착한 아이가 될게요. 제가 여행 가방 안에 있던 7시간 25분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어요.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기도 하고요. 아마, 가장 긴 잠을 자야 할 시간이기도 한 거 같아요.
아가야.
잠들었니? 그럼 마음의 문을 열어봐. 눈은 뜰 필요 없단다. 나와 함께 가자꾸나. 저 위로 말이야. 영원한 여행이 될 거야.
고생 많았어.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단다. 내가 알아. 내가 정말 잘 알아. 너는 참 착한 아이란 걸. 누구보다 착하고 여린 아이란 걸 말이야.
그래 옳지. 손이 참 고사리 같구나. 고사리 같은 존재가 참 많은 걸 이겨도 내었구나. 내 날개가 너를 진작 구하지 못했다는 게... 오히려 미안해.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참 많단다. 내가 만든 인간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나도 도통 알 수가 없어.
이젠 편한 곳으로 가자. 고통이 없는 곳. 웃음만이 있는 곳.
게임기가 절대 고장 날 일이 없을 그곳으로 말이야.
작가 주) 소설이었으면 좋았을 걸.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부디 평안한 곳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