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철학관>
하루는 일 년보다 길고.
일 년은 하루보다 짧다.
더디게 가는 하루.
어느새 사라져 버린 일 년.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냐면.
'지금'이라는 시간은 한 없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그보다 긴 시간은 그저 한낱 기억으로 치부하고 만다.
망각에 묻힌 기억은 하루보다 더 짧다.
하루라는 기억 또한 겹겹이 쌓인 일 년이라는 일련에 함께 부식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우리는 조급히 죽어가고.
서서히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죽어가는 것인가.
살아간다는 건 죽음으로 가까이 가는 과정이고.
죽어간다는 건 삶으로써 버티어 가는 과정이다.
죽음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삶도 느리지 않다는 것이다. 삶은 죽음으로 귀결되지 않는가.
고로, 조급히 죽어가고, 서서히 살아간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죽음의 시간과 삶의 시간은 동일하다. 삶이 소진되어야 죽음에 이르니, 죽음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삶 또한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느린 건 없다.
더딘 것도 없다. 어차피 우린 다 기억하지 못한다. 오늘 하루가 느린 건, 단기 기억 덕분이다.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며 소실되고 소멸되는 기억들은, 우리네 삶의 시계태엽을 재빠르게 돌려놓을 것이다.
오늘은 내 인생 가장 젊은 날이자.
또한 내 인생 가장 늙은 날이기도 하다.
죽음으로 바라본다면 가장 젊은 날이고.
삶으로 바라본다면 가장 늙은 날이다.
그래서 뭐.
뭣이 중한가.
그저 숨 쉬고 있다는 게 신비하고 허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