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고 앉았네>
"Aylin, estas lista? (아일린, 준비되었니?)"
"Sip, Papa (네, 아빠!)"
4차선이 3차선으로 줄어드는 이곳 Calle Principal 17 도로는 후안과 아일린 두 부녀의 무대다.
서로 가려는 차들이 뒤엉키는 데다, 신호도 짧아 늘 교통 체증이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듯, 모녀는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차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아일린이 부축을 받아 후안의 어깨 위로 올라간다. 넘어지지 않도록, 동시에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후안은 아일린의 발목을 꽉 잡는다. 이제 일곱 살인 아일린의 발목은 가냘펐지만, 불과 일 년 만에 퍽 두꺼워지기도 했다.
아일린은 저글링을 시작한다. 공은 단 두 개뿐이다.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의 최선의 손놀림으로, 아일린은 열심을 다한다. 교통 체증에 지친 운전자 몇몇이 아일린의 서커스를 구경한다. 또 다른 몇몇은 휴대폰을 보거나, 애써 부녀의 서커스로부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약 20초의 시간이 지나, 후안은 재빨리 아일린을 받아 내렸다. 모자를 벗어 자동차 사이를 다니며 돈을 구했다. '쨍그랑', 몇 개의 동전이 모자에 담긴다. 세련되고도 강렬한 빨간색 세단이 후안의 세 번째 손님이었다. 그 찰나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후안과 아일린은 재빨리 안전지대로 몸을 피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교통 체증이 풀리기 시작했다. 부녀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형국이다. 차가 더 막힐수록 그들의 공연은 성황을 이루기 때문이다. 아니, 돈을 받아 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리라.
아일린의 엄마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후안이 아일린의 엄마, 그러니까 그의 아내인 소피아를 하늘로 보내었을 때 그는 울지 않았다. 그보다 예쁜 아일린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일린은 제 엄마를 똑 빼다 닮았다. 은은한 시나몬의 피부색, 도톰한 입술, 굳이 크게 뜨지 않아도 그 자체로 똘망똘망한 눈, 적절히 엉킨 곱슬머리까지. 소피아의 부재를 느낄 새도 없이, 후안은 그 예쁜 아일린을 어떻게든 지켜주고 키워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한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후안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더 이상 건설 바닥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젊을 때 멋으로 피던 담배와, 어디로 들이붓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던 떼낄라가 문제였다.
도로 위를 지나가는 차는 다양한 색을 지녔다.
멕시코의 도로엔 서로 같지 않은 차들이 즐비하다.
멀뚱히 차를 바라보다가, 또다시 신호가 걸리면 후안은 아일린을 어깨 위로 올려 서커스를 시작한다.
힘들 법도 하지만 아일린은 별다른 투정 없이, 서로 뒤엉켜 교통 체증이 풀리기를 기다리는 차들을 관객 삼아 그들을 내려다보며 열심히 공을 돌린다.
"아일린, 배고프지 않니?"
"네, 아빠. 배고파요."
"따꼬를 먹을까?"
"네, 좋아요!"
도로 맞은편 어귀에는 길거리 따꼬 가게가 있다.
후안은 맛있게 따꼬를 먹는 아일린을 보며 오늘 걷은 동전을 하나 둘 세기시작했다. 최근 들어 따꼬 값도 많이 올랐다. 그에 반해 동전의 가치는 점점 더 떨어졌다. 혹자는 아이를 혹사시키는 것 아니냐는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후안은 알고 있다. 지금 이 모습이 아일린에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후안은 때로 자신들의 서커스로 교통 체증을 달래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보며 힘을 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었다는 것이 생각보다 큰 위안이었다. 아이를 생각하면 어서 정착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 우리는 왜 서커스를 하는 거예요?"
"그야...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지."
"정말요? 신난다. 이제 공 두 개 말고, 세 개로 돌리는 연습을 해볼게요."
"그래... 그러려무나."
아일린의 입가엔 초록색 살사가 묻어 있었고, 후안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눈앞에 있는 희망에 집중하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길.
파란색 공을 하나 더 사고. 혹시라도 빼앗길지 모르는 Calle Principal 17 도로 자리를 맡기 위해, 일찍 눈을 붙이기로 한다. 바닥 위 덩그러니 놓인 매트리스 위, 아일린을 꼭 안은 후안의 팔과 가슴으로 그 온기가 퍼져 나갔다.
어제보다 더한 온기 때문이었을까.
소피아를 보낸 그날을 떠올리며, 후안은 마침내 눈물을 흘려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