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고 앉았네>
어느 날 길을 걷다 무언가에 찔린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위로부터였다. 아마도 처음 그 따끔함을 느낀 건 정수리였을 것이다.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들더니 따끔함의 원인은 온몸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그래, 하늘에서 떨어진 바늘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어디서 온 것일까.
아니, 누가 왜 그것을 떨어 뜨린 것일까.
무언가를 떨어 뜨려 아래에 있는 사람을 놀래키거나 다치게 하는 건 초등학생이나 하는 짓 아닌가.
하늘에도 그리 철없는 존재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초등학생이라면 그건 단순한 유희일 것이고, 초등학생보다 조금은 더 철이 든 존재의 목적이라면 그 이유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수리를 통과한 따끔함은 뇌를 뚫는다.
그리 고통스럽진 않지만 무언가를 들킨 느낌이다. 기억, 이성, 생각, 자극, 반응. 머리카락만큼이나 얇은, 그러나 단단한 바늘이 뇌를 훑고 아래로 내려갈 땐, 정말이지 발가벗은 느낌이었다.
뇌를 지나, 얼굴과 목을 훑은 바늘은 약간의 방향을 틀어 심장으로 향했다.
안되는데. 거긴 안되는데.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마음을 들킬 까 무서웠다. 죽는 것보다 마음을 내보이는 게 더 두려웠다. 우습다. 아니, 하찮아 보인다. 마음 그게….. 그깟 뭐라고.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러한 자존심은 인간의 알량한 보루일까.
바늘이 내 것이라면, 그것을 머리에 주입한 것이 나라면 그건 자아성찰이겠지만.
내가 아닌 다른 존재나 타인이라 부르는 다른 사람의 짓이라면, 그건 이야기가 다르다. 자아 감청이라 해야 할까, 자아 감시라 해야 할까.
바늘은 다행히 심장 부근에서 그 전진을 멈췄다.
방어 기제가 작동된 탓일까. 심장은 바늘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온 세포가 뭉쳐 그것을 막았다. 철없는 존재의 장난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고, 얄팍하지만 진지한 존재의 강함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바늘의 수가 많아졌다.
그것을 떨어뜨리는 존재가 많아진 건지, 바늘의 수가 많아진 건지. 셀 수 없는 바늘이 떨어지며 사람들 속으로 침투하고, 어떤 바늘은 그것에 압도당한 사람을 조종하기도 한다. 심장까지 관통당한 사람들은 자아를 잃고, 좀비처럼 살아간다. 자신을 돌아보거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거나, 생각 같은 걸 하지 않는다. 도파민이 있으면 웃고, 그러하지 않으면 무엇을 하는지 저도 모르고 있다가, 무언가를 사고, 잠시 또 웃다가 더 많은 시간을 우울해했다. 심장에서 그 바늘을 떼어내지 않으면, 문제는 이러한 삶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바늘은 서로 교신이 가능했다.
그들은 뭉치고 뭉쳐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을 더 쉽게 조종했다. 웃게 만들고, 지갑을 열게 하고, 바람에 이는 겨와 같이 이리저리 팔랑 거리게 했다.
따끔함을 느낀 게 다행이지.
그 자그마한 따끔함을 몰랐다면, 바늘이 심장까지 가도록 놔두었다면. 마치, 몸속에 침투한 연가시가 숙주를 물에 빠뜨려 빠져나오려 하는 것처럼, 그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바늘을 얻어맞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을 던진 자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중요한 건, 따끔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지 못하면 당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무언가에 이끌려 사는 삶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거나.
질문하지 않거나.
이유도 없이 필요도 없는 걸 자꾸만 사려한다면.
당신은 지금 당장, 그 따끔함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