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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01. 2017

[쪽 소설] 습작#2.

왜 난 널 잊지 못하는가

긴긴밤을 생각해보았다.

왜 난 널 잊지 못하는가. 그렇다고 뚜렷이 기억이 나는 너도 아니다. 너와의 기억은, 추억은 바래질 대로 바래져 나의 심장에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수만 볼트의 전기로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던 너는 없다. 그런데 난 너를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자꾸 생각이 난다고 해야 옳겠다. 고로 내가 잊어야 하는 건 너일까. 아니면 너를 잊지 못하는 나일까.


잊지 못한다는 건 머리와 마음의 합작품이다.

머리가 기억하면 마음이 요동하고, 마음이 떠올리면 머릿속은 생생해진다. 어느덧 머릿속엔 영사기가 돌아가고 난 무기력하게 객석에 앉아 있게 된다. 너라는 주인공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 어느 영화처럼 달달하고 쓰디쓴 그것의 결말은 난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일어나질 못한다. 무릇 흥미진진하다. 감독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데, 여기저기 이야기를 수정해보고 싶다. 어땠을까. 바로 저 때, 내가 그랬다면.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추억이 떠올라도 마음이 아프지 않은 건 기억이다.

추억에서 기억으로 바꾸는데 난 셀 수 없는 시간을 들여야 했다. 시시포스의 저주처럼 나는 너를 잊다가 다시 떠올리고, 너를 지우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너를 그리곤 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선 좀 더 아프면 되었다. 죽을 만큼 아픈 것보다 아주 약간 조금만 더 아프면 된다. 간단하다. 아픔은 나에게 별로 어렵지 않은 무엇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네 덕분에.


들려오는 너의 소식을 나는 거부한다.

난 이미 너의 소식을 알고 있음에도 그럴 것이다. 행복하던 그렇지 않든 간에 내 알 바가 아니다. 불행하다 들었다. 기쁠 줄 알았다. 그런데 기쁘지가 않다. 그래서 난 지금의 이 감정을 거부한다. 아니, 보류한다. 너의 불행에 내가 기뻐할 때까지.


죽도록 사랑한 너와, 죽도록 이별한 나는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너의 분노의 주먹이 나의 마음을 가격했을 때를. 너를 옆 자리에 앉혔던 그때 맡았던 낯설고 낯선 공기의 내음을 잊을 수가 없다. 역했다. 그간의 달콤함을 지워버릴 만큼. 너라는 존재에서 뿜어져 나온 그 내음에는 독기가 있었다. 그래서 토악질이 날만큼 나는 역했다. 그러니 잊을 수가 있겠는가.


난 너에게 자유를 주었다.

아니, 네가 도망침으로써 자유를 얻었다. 우리가 한 모든 약속을, 네가 했던 모든 다짐을 뒤로하고 만든 자유. 너라는 독립 만세. 그런데, 자유가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너의 불행이 지금의 너를 말하듯이.


다시, 왜 난 널 잊지 못하는가.

네가 다시 돌아왔다면, 네가 나를 떠나 행복했다면 난 너를 잊었을지도 모른다. 미련도 아니고, 그리움도 아니고 절박하게 너를 그리는 것도 아닌데 생각나는 너를 어찌할까. 내 심장에 너라는 인이 박혀 지워지지 않아서 그럴까. 너에게 나도 그럴까.


의미 없는 생각에, 추억에, 기억에 눈을 감아본다.

어느덧 머릿속의 영사기는 멈추었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제목

나는 왜. 대체 왜.

널 잊지 못하는가.


너라는 주연.

나라는 조연.


다시,

나라는 무기력한 감독.

나라는 무능력한 작가.


그리고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에


난, 널 잊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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