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를 넘어 메타정서로

<스테르담 자기 계발의 정석>

by 스테르담
높은 곳에 올라
도심을 바라본 적이 있다.


전쟁터와 같은 그곳이 평화로워 보였다.

나를 가두고 있는 회색빛 빌딩과 사무실은 잘 정렬된 성냥갑처럼 보였고, 분노를 유발하는 교통 체증은 작고 귀여운 장난감 자동차들의 행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세상에 사람이라는 존재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허탈하면서도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왜 그리 아등바등 살아왔을까? 좀 더 여유롭게 살 순 없었던 걸까? 나는 왜 그 사람을 좋아하고, 또 그 사람을 미워했을까? 그때 그 사람에게 왜 그랬을까? 좀 더 배려 있는 마음을 가졌어도 되는 거 아닌가? 그저 한 번 웃고 넘길 일을 나는 왜 그리 일을 크게 키웠을까? 인생 뭐 있다고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한번 더 포용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자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새로운 삶을 살자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하산(?)을 한 후, 다시금 전쟁터의 병사가 되는 데에는 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사랑하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좌절하며 삶의 풍파에 녹아들었다. 다시금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휘말린 삶은 고요할 수 없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딪치며 ‘오늘을 버티자’ 외치며 잠자리에 드는 날이 반복되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듯이 풍경엔 여유가 있고, 근경엔 소란이 있다.

우리는 대개 남의 삶은 쉽게 평가하고 부러워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잘 굴러가고 잘 풀리는 것 같다. 내 인생만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자신을 엄습한다. 이처럼 남의 삶이 흥미롭고 여유 있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삶은 내게 있어 풍경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에게 있어 내 삶은 근경이다.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을 것들이 세세하게 그리고 덕지덕지 보인다. 지금 당장 내 주변의 사물들을 보자. 보이지 않던 먼지가 보이고, 의식하지 못했던 흠집이 발견된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만, 자세히 봤을 때 실망하게 되는 것들도 꽤 많다.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사무엘 존슨은 ‘외적인 영향에 좌우되고 싶지 않다면 먼저 자기 자신의 격렬한 감정부터 초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건 초월이란 단어다. 초월은 경험이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 그 바깥 또는 그 위에 위치하는 일을 말하는데, 범위를 벗어난다는 의미가 ‘나는 그것과 상관없다’라고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즉, 초월은 내 경험과 인식을 가지고 다른 각도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을 말한다.


메타인지를 넘어
메타 감성으로


'메타인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모르는 것. 더불어, 나 자신을 탐구하고 관찰하여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것이 바로 메타인지의 핵심이다.


이것은 이성적인 판단의 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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