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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20. 2017

어느 누가 플라멩코를 정열이라 했나

정열보다 강하게 느껴진 집시의 한(恨)


- 여정 -


암스테르담 To 말라가 (비행 3시간)
말라가 To 론다 (110km)
론다 To 세비아 (134km, 2박)

세비아 To 코르도바 (141km)

코르도바 To 그라나다 (208km, 2박)

그라나다 To 네르하 (93km)

네르하 To 프리질리아나 (10km)

프리질리아나 To 말라가 (54km, 1박)

말라가 To 암스테르담 (비행 3시간)



내가 무식했다.


아는 것 없이 섣불리 덤빈 결과였다. 다만,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더 좋았다.) 나의 그리 넓지 않은 견문과 식견으로 플라멩코는 '정열'이라는 것과 함께 있어야 했다. 즉, '정열의 플라멩코'. '정열'을 빼고는 '플라멩코'를 말하기가 허전하고, '플라멩코'를 뺀 '정열'은 목적 없는 어느 한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나에게 존재하던 편협한 편견이자 프레임이었다.

안달루시아의 관문 말라가에 내려 론다를 거치고 오랜만에 울컥울컥 수동 자동차를 끌고는, 그리 쉽지만은 않게 도착한 세비아였다. 그곳에서 나는 '정열의 플라멩코'를 보고 조금은 지친 여정에 힘을 보태고자 했었다. 이전까진 플라멩코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그저 요즘 유행하는 춤 동호회를 나간다는 후배에게, "그 뭐냐, 그럼 거기서 탱고나 플라멩코 이런 거 배우는 건가?"라고 묻는 수준이었다. 탱고와 플라멩코의 차이도 몰랐다. 그저 뭔가 '정열적으로'움직인다는 어렴풋한 이미지를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내게 플라멩코를 보기 전까지의 기대감은 어느 스포츠를 관람하기 전의 기분, 그것이었던 것 같다.


플라멩코의 칸테 (Cante,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남자가 무대에 올랐다. 한 사람은 기타를. 한 사람은 그의 고귀한 악기인 목을 준비한 채. 기타 선율이 울린 뒤 몇 초가 지나지 않아 터져 나온 다른 한 사람의 노래는 참으로 구성졌다. 어라, 내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을 넘어 180도 다른 무엇이었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남자의 노래는 너무나 구슬펐다. 그 언젠가 중동 출장이 잦았던 때, 시간이 되면 흘러나오는 모스크의 기도 소리 같았다. 또 어떻게 보면 스님이 불경을 외는 것과 분위기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열'을 기대한 나였다. 다이내믹하고 세련된, 우리나라 한 여배우가 스페인 광장에서 화려하게 추던 휴대폰 광고 속 플라멩코를 기대한 나였다. 그런데, 플라멩코의 노래는 구슬펐다. 한이 서려있었다. 스포츠(?) 관람을 하러 온 나는, 갑자기 경건하게 자세를 바로 잡았어야 했다. 그리고는 칸테에 빠져들었다.


플라멩코의 바일레 (Baile, 춤)는 더 없는 한(恨)의 몸부림.


붉은색의 화려한 치마를 입은 여성이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나의 경건한 자세는 여전했다. 그녀의 표정이, 손짓이, 몸짓이 여전히 구슬프고 구슬펐기 때문이다. 동작은 화려했다. 발동작은 마치 탭댄스를 보는 것과 같이 리듬이 살아있고 절도가 있었다. 그녀의 눈썹 때문이었다. 표정의 반 이상을 이야기해주는 그 눈썹은 한자로 팔(八) 자를 그리며 슬퍼 보였다. 나의 눈썹도 그녀를 따를 정도였다. 숨을 죽였다. 그녀의 춤사위는 강렬했지만, 전해지는 느낌은 서글펐다. 화려한 회전과 그 좁은 무대를 드넓게 아우르는 카리스마는 솔직히 '정열'과 거리가 멀었다. 그것을 '정열'로 표현했다면 그것은 플라멩코의 '겉'을 표현한 거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그녀의 손목이, 손가락이 꺾이고 꺾이면서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을 연상케 했다. 말이 병신춤이지 공옥진 여사는 인간의 껍질을 벗겨버리는 통증을 표현하기도 했다. 인간의 고통과 속내, 한, 그리고 해학으로 후련함을 모두 표현한 그것이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남자의 바일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자의 그것이 좀 더 박력 있다거나 좀 덜 슬프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옷이 다르고 성별이 다른, 그러나 사람이라는 '같은 존재'로서의 속내가 드러나는 몸부림이었다.


플라멩코의 토케 (Toque, 음악 연주)로 마음을 정화하다.


사람의 구슬픈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한 숨 막히고 숨찬 바일레를 끝낸 남녀는 잠시 무대 뒤로 이동한다. 다시 두 남자가 덩그러니 남아 간혹 구슬픈 목소리를 내며 기타 연주를 이어간다. 기타 소리 또한 구성졌다. 구슬펐다. 한이 서려 있었다. 정열이라고 해도 좋지만, 어쩐지 경건했다. 조금 전 바일레를 추었던 남녀가 함께 무대에 올라 토케를 하는 사람 양 옆에 선다. 화합의 모습과 같았다. 에너지를 얻으려 온 이곳에서, 마음의 정화를 얻을 줄이야.




한 시간 이상을 훌쩍 넘긴 공연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내 앉은 자세는 여전히 바로 잡힌 상태였고, 미간은 약간 찌푸려져 있었다. 인간의 고뇌와 인생사를 영사기로 돌려 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기분 나쁘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뭔가 정화된 느낌, 그것이었다. '정열'은 그 안에 포함된 어느 하나의 것이었다. 지식으로는 잘 모르겠다. 칸테와 바일레 그리고 토케가 이리 순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또한 내가 모르는 정말 '정열적인' 또 다른 플라멩코가 있을지 모르겠다. 무식으로 만난 플라멩코의 이 첫 공연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기에 내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누가 플라멩코를 '정열'이라고 했을까.

맞고 틀리고를 논하는 질문은 아니다. 그저 궁금할 뿐. 우리네 한과 구슬픔이, 어쩌면 힘든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역설적인 힘, '정열'이라 이르게 된 반어법을 어느 누군가는 이미 깨닫고 한 말일지도. 그렇게 세비아에서의 플라멩코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P.S


공연이 시작된 지 10여분이 흘렀을까. 이미 두 아들 녀석은 각자 최상의 자세를 잡고 잠이 들어 있었다. 그래, 아직 너희는 인생의 한과 서글픔을 알기에는 너무 어리지. 푹 자거라. 그리고 이러한 한과 구슬픔이 살아가는 역설적인 힘이 된다는 걸 너희들이 알 때면, 나는 너희들과 내가 느낀 플라멩코의 그것을 함께 논하고 싶다. 먼 미래의 일이지만, 곧 다가오겠지. 사는게 그렇지. 인생이 그렇지.


플라멩코 칸테가 시작되고
그의 얼굴에는 서글픔과 한이 서려있었다
화려한 옷과 그 색에 시선을 끌려도, 구슬픔은 지울 수가 없다
사력을 다해 춤추는 그에게서 정열과 열정과 삶의 회한이 함께 느껴졌다
손가락 마디 마디를 꺾는 것이 어째 인생의 굴곡을 말하는 것 같다
플라멩코 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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