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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그 무엇보다 역동적인 행위다.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by 스테르담

견디기는 그저 버티고 서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내일을 생각하며, 달리고, 넘어지고, 뛰어오르는 것이다.


by 스테르담



어느 날 문득,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는 회의가 들었다.

그러한 회의감은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물려받은 게 없으니, 신의 위치에 있지 않으니 그저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스스로를 돌아보니.

나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이 등 떠미는 대로, 사람들이 나를 마구 대하는 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성장하려 애쓰고,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려는 발버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나를 그렇게 포기하거나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꽤나 역동적으로 하루를 살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하여 무기력하거나 무능력한 건 아니다. 버티기와 견디기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들어간다. 물리적인 체력과 근력은 물론, 정신적인 지지대도 굳건하다. 반작용의 에너지를 환산한다면, 이것은 멈춰 있는 게 아니다. 버티기와 견디기는 저항의 힘이므로, 방향성이 있다. 방향성이 있다는 건 움직임의 다른 말이고, 달리 표현하여 우리는 이것을 역동적이다...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다고 역동적이지 않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글쓰기도 이와 같다.

가만히 앉아 조용히 글을 쓰는 것 같지만. 머리와 마음엔 우주의 유영과 맞먹을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감정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야 하고, 생각의 스위치를 켜 논리와 감성을 적절하게 섞을 줄도 알아야 한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생각이 이끄는 대로, 그 둘을 적절히 조합하여 쏟아내는 내 마음속의 것들은 갓 잡은 물고기처럼 펄떡인다. 이럴 때, 잽싸게 우리는 그것들을 활자로 남겨 놓아야 한다. 펄펄 살아 있는 내 감정과 생각을 보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이제껏 내가 찾은 가장 좋은 수단과 방법이 바로 '글쓰기'다.


고로, 나는 글을 쓸 때 내가 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달리고, 넘어지고, 뛰어오르며 감정의 능선을 분주히 돌아다닌다.


역동성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동시에,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글쓰기 또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글쓰기가 만들어내는 생산의 에너지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강해지고 짙어진다.


슬럼프가 올 때.

번아웃이 나를 정복할 때.

무기력과 회의감이 영혼을 잠식할 때.


나는 역동적일 준비를 한다.


글을 쓰고. 산책을 한다.

그리고 내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견딘다.


그 이상으로 역동적인 척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삶과 아웅다웅하거나, 척지거나, 싸우지도 않는다.


그저 나의 역동성에 집중할 뿐.

그저 나의 글쓰기에 집중할 뿐.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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