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과 경거망동의 괜찮은 조화
케르미스 (Kermis)
처음 네덜란드에 왔을 때, '케르미스'가 들어왔으니 한 번 가보라는 더치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어 자체가 낯설었을 뿐만 아니라, 더치어로 'Kermesse(케르메세)'라 불리는 이름이 귀에 와 닿지 않았다. 해서, 또 발동이 걸렸다. 이게 무슨 뜻일까. 알아보기로.
Kermesse 또는 Kermis는 더치어로 'Kerk'와 'Mis'의 합성어로 알려진다. 각각 'Church(교회)'와 'Mass(대중, 집단)'의 의미다. Festival과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 지금, 그 옛날 교회의 설립일을 기리는 연중행사에서 후원자들과 함께 파티와 축제를 즐기는데서 유래했다. 지금은 부활절이나 왕의 날, 크리스마스 등의 큰 행사가 있는 즈음에 각 광장에 들어서는 '이동식 놀이기구'로 변모했다. (각 도시별 일정은 http://www.kermis.nu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처음 암스테르담 담광장에서 이것을 마주했을 때의 놀라움은 잊을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연히 마주했던 그 첫인상은 강렬했다. 담광장으로 차를 몰고 가던 중 건물 사이사이로 보이던, 알 수 없는 불빛의 정체. 그리고 그곳에 다다라 마주했던 결코 작지 않았던 크기. 담광장에 빼곡히 욱여넣은 각종 놀이기구와 게임 기계, 그리고 푸드트럭까지. 규모에 놀란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고풍스러운 네덜란드 왕궁과 어울리지 않는 다소 '경거망동'해 보이는 것과의 부조화에 또 한 번 놀랐었다.
그럼에도, 케르미스를 만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동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소박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규모 그리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을 모두 상기시키는 그 매력은 대단하다. 이동식이어서, 경거망동해 보여서, 주위와 어울리지 않아서 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즐기면 된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관용'과 '흥'이 빚어낸 즐거움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창경궁 앞에 이동식 놀이동산을 가져다 놓고 운행하는 모습이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창경궁은 예전 일제 잔재로 '창경원'이라고 불리며 동물원과 놀이동산으로 바뀌었던 아픔이 있긴 하다.)
케르미스와 만나 가장 좋은 건, 바로 그 도시의 정수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도시의 정수리, 즉 전망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지반이 약해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을뿐더러 간혹 있는 교회 종탑까지 올라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관람차에 올라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시원한 바람. 상상하지 못했던 네덜란드 어느 도시들의 정수리. 시선과 관점이 바뀌는 즐거움은 말로 다하지 못한다.
암스테르담 케르미스에서만 보던 것을, 오늘 하를럼에서 만나게 되었다. 꽃도 보고 케르미스도 즐기고. 참으로 소소한 모습이지만, 어쩐지 삶에 힘을 가득 넣어주는 선물과도 같다.
네덜란드에 온다면, 꼭 마주해야 할 여행의 묘미다.
참고글: 암스테르담 케르미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