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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04. 2017

[쪽 소설] 정상(正常)

정상인 나에게 사람들이 부여하는 그 이름

눈을 떴다.

그것이 아침인지 저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잠을 깨운 건 햇살이었다. 계절이 그러하여 해가 긴 날에 잠을 들었다가 일어나면 누구라도 헷갈릴 수 있다. 참새라도 짹짹거리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눈을 떴지만 순간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위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아직도 자고 있는지 모른다. 자고 있는 동안 눈이 떠졌고, 그저 지각(知覺)이 반반 나누어져 눈을 떠 사방을 볼 수 있게는 하였으나, 몸은 아직 자고 있노라며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일 수도 있다. 갑자기 천장에 그려진 하나의 문양에 시선이 갔다. 시선이 가니 정신이 쏠렸다. 안돼. 문양에 집중한 나의 눈 위로, 그 천장이 다가왔다.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단 몇 초면 닿을만한 거리인데도, 그 속도는 수백 킬로를 맞먹었다. 나에게 달려오는 그 천장은 야속할 정도로 빨랐다. 눈은 떠져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나의 가련한 몸뚱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소리를 질렀다. 다급함에 나온 그 소리는 괴성에 가까웠다. 영화처럼 멋들어지지 않은 그 비명이 처절했으므로 온 가족이 내 방으로 달려왔다. 가족들의 허둥지둥 댐이 보였지만, 천장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나에게 달려오는 저돌적인 저 존재를 뿌리치기 위해 난 눈을 감으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의 괴성은 계속되고 있었고, 눈은 감지 못하고 있었다. 시선을 돌려 가족 중 한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울고 있었다. 어느새 천장은 나를 뚫고 지나 땅 아래로 꺼지고 없었다. 가족을 놀라게 한 건 미안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나에게 달려드는 천장을 보고 소리를 지른 건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었다. 누군가에 안겨 눈을 감아 다시 잠에 스르르 들 때쯤, 난 온몸을 다시 움직여 뒤척일 수 있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부산스러운 가족들의 움직임과 흐느낌을 제외하면.


오랜만의 외출이다.

혼자서 외출해본 적은 거의 없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상이란 말이다. 아직은 보호가 필요할 테니. 어디를 가는지 모르지만, 택시와 전철을 번갈아 탈 것이라는 것은 잘 안다. 택시를 타면 우리 가족은 긴장을 한다. 내가 종종 멀미를 하기 때문이다. 옆에 앉은 가족의 손에는 그것을 대비한 비닐봉지가 꼭 쥐어져 있다. 멀미하기 전에 보이는 증상 없이, 나는 태연하게 멀미를 하곤 한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그 먹먹한 느낌을 사전에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올라오는 그 느낌이 많이 싫지도 않다. 그러니 나는 앞을 똑바로 응시한 채, 입에서는 토사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토악질은 그다음에 이루어지니 나와 함께 하는 가족이라면 응당 긴장을 할 수밖에. 더불어, 나는 멀미 따위는 걱정하지도 않은 채, 가능한 정면 의자를 바라보거나 천장을 바라본다. 그렇지 않으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을 다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들어온 앞 차의 번호판 숫자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거기에 다른 번호들이 비집고 들어오면 내 머리는 연산을 하기 시작한다. 먼저 들어온 숫자가 지워지지 않는데, 수많은 숫자들이 들어오니 내 머리는 터질 것 같다. 더하든 빼든, 곱하든 나누든 머릿속 숫자들이 요동한다. 머리가 막 흔든 콜라병의 뚜껑을 여는 것처럼 터져버릴 것 같다. 이내, 나는 머리를 이리저리 박아댄다. 그것이 딱딱한 벽이든, 택시의 유리든, 문이든, 의자든 말이다. 머리가 콜라병처럼 터질 것 같은데 가만히 있는 것이 비정상 아닌가?

지하철을 타고나면 수많은 것들이 보인다. 저기 앞에 서 있는 남자의 키는 자동으로 계산된다. 머릿속에 그려진 가상의 삼각형의 각도가 이리저리 오가며, 그 사람의 키를 가늠한다. 맞는지는 모르겠다. 가서 확인해볼 수가 없으니. 그 남자가 나를 쳐다본다. 나의 시선을 느낀 것이다. 나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던 그 남자는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다, 계속되는 나의 시선을 피해 다른 칸으로 가고 만다. 옆에서는 한 아가씨가 무언가를 먹고 있다.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그 아가씨의 입술이 어느새 얼굴에서 분리되어 내 귀에 떡하니 붙어 쩝쩝 거리며 먹는 소리를 낸다. 눈을 질끈 감는다. 쩝쩝 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뭔지 모를 부스러기들이 귓구멍 속으로 들어온다. 두 손으로 귀를 막아 머리를 이리저리 흔든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매우 건강하다.

쉬이 피곤해지거나, 어디가 아파 끙끙 앓으며 누워 있던 적이 없다. 그런데 병원은 자주 간다. 왜 가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말한 대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질 때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일 뿐. 나는 나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나보다 더 깔끔 떨고, 과민 반응하고, 화내고, 울고 웃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오히려 감정의 기복이 적다. 그러니 언제나 차분하다. 살아가기도 바쁜데 뭘 그리 슬퍼하고 기뻐하고, 울고 웃나. 그냥 흘러가는 거지. 신이 사람을 만들 때 저마다의 개성대로 빚었으니, 각기 다른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물론, 그 신이라는 존재가 절대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 신을 만든 존재가 아마 절대자가 아닐까 한다. 난 가끔 우주와 교신하는 느낌을 받는다. 우주가 내 머릿속에 있을 때도 있고, 내 머리가 우주로 날아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즉, 우주와 나는 하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내가 죽으면, 이 우주도 끝이다. 또는, 누군가가 나를 꿈꾸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꿈을 꾸듯이 말이다. 가끔 현실이 가짜 같고, 기억하거나 상상하는 것들이 진짜일 거란 확신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엔 관심이 없다. 모두가 가짜일 수도 있으니. 사람도 감정도. 기억도 추억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나도. 당신도.


오늘도 나의 방문이 닫혔다.

나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하염없음이 아무렇지도 않다. 그들의 감정을 모르겠다. 난 잘 지내는데, 왜 이리 슬퍼하는지. 내 몸은 그저 껍데기일 뿐. 이 안에 있는 나는 지극히 정상이다. 떨어지는 천장에, 귓속을 파고드는 그 무엇에,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그저 반응하는 것일 뿐. 가족들은 내가 눈을 감은 것을 확인하자 불을 끄고 나갔다. 불이 꺼지면 나의 눈은 떠진다. 그리고 그렇게 밤을 지새운다. 잠은 뭐, 안 자도 그만. 눈을 뜨고 밤을 지새우는 건 별 일이 아니다. 의의로 시간이 빨리 간다. 그 시간은 나의 무의식과 만나는 시간. 눈 앞에 또다시 우주가 펼쳐지고 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블랙홀과 같은 그곳에 빨려 들어가 허공을 헤매다, 그것이 나를 뱉어내면 곧 아침이다. 내 몸과 영혼이, 그리고 시간과 어둠이 함께 빨려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내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거울을 본 기억이 없고, 지나가는 유리에 내 모습을 유심히 본 적도 없다. 가만,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라. 뭐,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겠지 뭐. 껍데기가 뭐가 중요할까. 난 나인데. 이름도 가물가물. 당신은 당신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지금 웃고 있다면, 울고 있다면 그 근육들의 일그러짐을 일일이 다 짐작하는가? 이름은? 열 번을 외쳐보면, 점점 더 낯설어지는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 오늘 병원에 갔을 때. 

내 이름보다 더 많이 불리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을 다시 한번 더 확인했다.


성은 '자' 씨고, 이름은 '폐아'였던 것 같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어감이 썩 좋지는 않다. 병원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을 보면, 뜻도 별로 기대되지 않지만. 눈 앞에 날아오는 공을 피하는 나의 행동이 그렇게 이상한가? 피해야 정상일 텐데. 나의 그러한 행동이 병원까지 갈 일인가? 사실, 병원에서 뭘 시도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녀와봐야 감흥도 없다.


그들은, 나의 우주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해받고 싶지도 않다. 아니, 그들이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내내 불편하다.


지들의 것이나 돌아볼 일이지.

그러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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