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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04. 2017

[쪽 소설] 꿈

꿈과 같은 현실, 현실과 같은 꿈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어느샌가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느낌을 눈치챘다. 눈치챈 지 얼마 되지 않아 온 몸의 힘이 아니라, 기력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이었다. 풍선의 주리가 열린 마냥 내 온몸의 기력은 어디론가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누군가 진공청소기로 내 몸에서 영혼을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이 너무 급속하여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죽음이구나.'


죽는 그 순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 나의 육신에 대한 경악을 뒤로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되는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죽음 너머에 있는 세상이, 나에게 일어날 일들이 더 궁금했다. 호기심이 일었고, 흥미진진했다.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슬퍼하지만, 어쩌면 죽는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죽는 순간 오히려 평안해지고 꽉 쥐고 있던 그 긴장감을 한 순간에 놓는 시원함. 그것에 대한 기대가 큰 사람들은 그래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니까.


순간 잠에서 깼다.

역시 꿈이었다. 친숙한 천장의 문양이 먼저 보였다. 밖은 아직 환했다. 그 햇살이 눈에 닿아 깊은 잠을 방해했으리라. 기력이 빠져나가는 그 느낌은 너무도 생생해서 여전히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꿈이 조금만 더 지속되었더라면, 알 수 있었을지 모른다. 죽은 후에 나는 어디로 가는지. 무엇과 마주칠지. 

꿈이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죽은 후에 맞이한 것은 바로 '현실'이었다. 내가 자고 있던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죽는 꿈을 꾸던 그 순간은, 나에게 있어 '현실'이었다. 아직도 후들거리는 다리와 얼얼한 온몸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죽는 그 순간 '현실'에 있었고, 죽음 이후에 나는 지금의 '현실'에 있는 것이다. 그냥 꿈일까. 지금 사는 '현실'이 어쩌면, 정말 어쩌면 어느 죽음 이후의 삶이 아닐까. 누군가의 죽음 이후 인지, 아니면 나의 것인지.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가는 인생을 반추해보니, 그 지나온 세월의 시간과 속도는 도저히 물리적인 시간으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현재 살고 있는 이곳이 '현실'이라는 것은 '연속성'에 기인한다. 지나온 과거, 그리고 바로 어제의 일. 그리고 오늘. 내일 해야 하는 일들이 내가 '지금'을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1분 전까지의 일이라도 누군가 나에게 주입한 것이라면? 그래서 과거가, 기억이, 추억이 물리적인 시간에 준하지 않고 띄엄띄엄 생각나는지. 생각보다 빠른지. 나는 정말 죽었고, 다시 깨어난 나에게 몇십 년의 기억을 한꺼번에 주입하여 오늘을 살게 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이 되어 살고 있고, 또다시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며, 죽고 나면 또 다른 기억이 심겨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러니 다시 원점이다.

나는 왜 살고 있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우리는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태어나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 은하계를 통틀어보면 먼지 같은 이 존재들의 아우성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 그런데 우리는, 나는 왜 이리 큰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병든 병아리처럼 왜 이리 무기력한 지. 아, 다시 그 무기력함의 크기가 커지면서 나는 어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도 생생해서, 마치 달려오는 트럭 앞에 몸이 얼어 부딪칠 것을 알고도 도망가지 못하는 아기 고양이처럼 얼어붙었다. 누군가 또다시 내 영혼을 몸에서 쑤욱 잡아당긴 것이다.


'젠장, 또 죽음인 것이다.'


다시 잠에서 깼다.

아니, 이건 어디선가 느껴본 것이다. 눈을 떠보니 밤이었고, 난 집이 아닌 길거리에 있었다. 갑자기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커피를 세 잔 마신 일. 애인과 다투었던 일. 어릴 적부터 자라온 기억과 추억 또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내일 해야 하는 과제와, 누군가와의 약속. 아니, 가만. 자꾸 누군가 나에게 '연속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오늘 내가 누군지, 왜 죽는 꿈을 두 번 꾸었는지, 그리고 여기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눈을 떴는지 모른다. 그러니 '연속성'이 깨진 것이다. 머리가 아파왔다. 누군가, 내 영혼을 뽑아간 존재가 깜빡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기억과 계획만 주입하고, 오늘의 현실에 대한 정보를 주입하는 것을 잊었나 보다. 차라리 오늘에 대한 기억이, 내가 누군지 대한 기억이 바로 돌아오질 않길 바랐다. 그래야 기억의 부조합을 근거로 나는 스스로가 갇힌 틀을 더 깰 수 있고, 과거와 미래의 엇박자를 무기로 지난 두 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파헤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미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워있던 공원 벤치를 박차고 일어나 섰다. 그리고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박차고 일어선 건, 나의 몸이 아니라 영혼이었다. 저기 나의 몸은 그대로 공원 벤치에 누워있었다. 또다시 순간 나의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위로부터 들었다.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한 줄기 빛이 섬광과 같이 다가왔다. 그 섬광에 시력을 잃을까 눈을 질끈 감았다.


몇 초만에 정신을 차렸을 땐, 누군가와 마주해 있었다.

모습이 보이진 않았다. 그저 느낌이었다. 목소리였다. 처음 듣는 언어였지만 이상하게 이해가 되었다. 나의 몸은 어디를 딛고 있지 않은, 그렇다고 날고 있거나 공중에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아무 데도 속하지 않은 느낌. 사방이 나를 그저 놔두고,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진공의 상태. 마치, 누군가 조금이라도 나를 빨아들인다면 그저 그리로 가게 될 것처럼.


잠시 너를 불렀다.

목소리였다.

삶의 '연속성'을 의심하는 너는 누구인가. 간혹, 그렇게 제 삶의 연속성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자가 꼭 튀어나온다. 그래서 그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려보내 또 다른 연속성을 부여한다. 


나는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막힌, 아니 아예 없는 느낌이었다. 입도 벌릴 수가 없었다. 입마저 없는 느낌.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더니, 나는 아무 말 도 할 수가 없었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감정의 표현을 무엇으로도 할 수가 없었다.


궁금한 것이 많을 것이다.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위해 부른 것이 아니다. 경고를 하기 위함이다. 삶의 연속성을 의심하지 말라. 다시 한번 더 말한다. 꿈에서 깰지언정, 데자뷔가 일어나 순간 삶의 기억이 뒤죽박죽 될지언정 깊이 생각하지 말라. 그저 살아가라. 너에게 주는 조언이자 충고다.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내 안다. 하지만 나도 답을 줄 수가 없다. 나는 내 일을 할 뿐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왜 이렇게 사는지는 나도 모른다. 실망했을 것이다. 내가 절대자라고 믿었을 테니. 하지만 절대자란 없다. 그 누구도 만나보지 못했다. 기대하지 말라. 이 세상은, 저 세상은, 그 세상은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곳이다.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그저 연속성을 믿고 따라가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믿고 싶은 것만 믿어라.
그것이 너희가 신이라고 여기는 존재가 주는 선물이다.


"아아악!!!!!!!!"

나는 소리를 질렀다. 막힌 목구멍과 닫힌 입이 열린 것이다. 사력을 다해 몸부림치며 일어나 내 온몸의 땀구멍은 열리고 열려 침대가 흥건히 젖어 있었다. '현실'과 같은 일이 몇 겹으로 이루어진 꿈을 곱씹으니 허탈했다. 볼을 꼬집기 전에 내가 기르는 덩치가 큰 맥스란 녀석이 나의 볼을 핥아댔다. 아, 이거 꿈이 정말 뭐 같....


아, 맥스. 이런 개.....

그리고 꿈.....


난 허탈하게 웃었다.

창 밖에서는 노을 진 하늘이 붉게 타고 있었고, 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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