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사람과 사람

by 스테르담

김 씨는 출근길에 나섰다.

오늘따라 27개월 된 딸아이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놓칠 않았다. 김씨의 아내가 애써 그 어린아이를 남편에게서 떼어냈다. 잘 다녀올게. 그 아침의 인사였다. 사내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털털털하며 걸린 자동차의 시동이 영 시원치 않았다. 사람으로 치면 천식 걸린 60대 노인처럼 연신 콜록콜록 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디선가 업어온 이 자동차는 작업 장비를 뒤에 한 가득 싣고, 그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친구였다. 골골거리긴 해도, 여태껏 잔고장 없이 잘 달려줬다.


김 씨는 오늘도 마음을 다잡았다.

27개월 된 딸 말고도, 고등학생과 중학생 그리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합하면 총 5남매가 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녀석들의 속 썩임과 애교가 뒤섞여, 힘들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지만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쓰고 달고 한 것이라 혼자 읊조렸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못할 것이 없었다. 부모란 이름에 가장이란 직책이 주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뒷자리에선 작은 사다리와 로프, 갖가지 장비들이 연신 덜그럭 소리를 냈다.

아직 일하는 곳에 도착하려면 10여분 정도가 남았다. 그때 이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은 꿈자리가 사나워 일을 못 나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알았다고 했다. 김씨가 그 일까지 하면 되기 때문이다. 집에 가는 시간이 좀 늦어지겠지만, 단돈 만원이라도 더 벌면 아이들에게 치킨을 더 사다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일하는 곳에 도착했을 땐, 강씨도 이제 막 도착한 상태였다.

김씨와 이씨, 그리고 강씨가 한 팀이 되어하려 했던 일은 아파트 외벽 공사와 그 외벽에 글씨를 써넣는 일이었다. 이씨가 나오지 않았으니 강씨와 일을 둘로 나누기로 했다. 미술로 밥 벌어먹기 힘들다고 언제나 툴툴대던 강씨가 외벽에 글씨 쓰는 일을 하기로 했다. 강씨의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간간히 자신의 그림들을 가져와 직접 보여주기도 하는 강씨였다. 정말 유명 화가가 와도 밀리지 않을 솜씨였다. 김 씨는 대체 저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데 왜 성공을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그 그림들이 강씨의 밥을 먹여주진 않았다. 자신의 체구보다 큰, 2미터가 넘는 아파트 이름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강씨의 일당은 글자 수에 달려있었다. 아파트 이름이 두 글자이니 자당 3만 원, 즉 6만 원이었다. 거기에 아래 동과 호수를 나타내는 작은 글자들은 자 당 1만 원. 강씨의 일당은 오늘 13만 원인 것이다. 오늘 꿈자리가 상당히 좋았다던 강씨는 얼굴이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글자 수가 흡족한 건지, 아니면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 때문이었지는 알 수가 없었다.


김 씨는 15층 부근에 위치한 외벽을 손보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강씨와 함께 옥상에 올라 안전 장비를 챙겼다. 장비라고 해봤자, 베베꼬인 굵은 로프에 합판을 달아 그네처럼 만든 모양새였다. 20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해오면서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 가끔 휴대폰이나 안경, 소지품들을 떨어뜨려 박살 난적이 있긴 했지만 큰 일은 없었다. 합판을 덧대어 만든 공중 의자는 제법 편했다. 줄에 매달려 일하는 것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2중 3중으로 줄을 덧대어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고, 또 반복하며 일하다 보니 내성이 생겼다. 사람들은 그 무서운 일을 어떻게 하냐며 걱정을 했지만, 김 씨는 튼튼한 로프를 믿는다고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절대 끊어질 일도 없고, 오히려 사람보다 더 믿음직스럽고 든든하다고. 20년이 넘어도 굳건한 로프가 사람보다 더 낫다고.




같은 시각.

천사와 악마가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사가 말했다.

자네. 베를린 천사의 시란 영화를 보았나? 그 왜 있잖아. 인간을 사랑해서 천사임을 포기하고 내려간 그 어리석은 녀석의 이야기를 다룬. 거기보면 말이야, 천사가 베를린의 한 복판에 있는 전승탑에 올라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와 함께 베를린을 내려다봐. 그러다 서커스에서 일하는 한 여성을 보고는 한눈에 반하지. 그런데 우린 뭔가. 이런 기중기 같은 이상한 구조물 위에나 있고 말이야. 천사도 유럽 천사가 더 낫지 않나. 여긴 랜드마크도 없어. 있어 봤자 드높은 빌딩. 뭐 낭만도 없고. 그나저나, 오늘은 무얼 할 건가?


악마가 말했다.

그래. 참 모양 빠지게 말이야. 나야 뭐, 오늘 하던 거 그대로지. 사람들 마음에 들어가 이것저것 찔러보는 거. 미움, 질투, 분노, 조급함, 죄책감 등을 조금 주입해주는 것. 재밌는 건 말이야, 아주 조금만 주입해줘도 사람들은 알아서 저희들끼리 크게 키워. 내가 아직 초짜 악마여서 그런지, 가끔은 사람들이 무섭다니까. 그래서 자네의 오늘 계획은 뭔가?


천사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하는 것을 반대로 해야겠지. 화해시키고, 진정시키고, 여유를 갖게 하고, 용서하게 하고, 자신감을 갖게 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도록. 나는 이런 걸 많이 주입해줘야 해. 어떤 때는 한껏 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고 보니 이제야 알겠네. 내가 자네보다 바쁜 이유. 좀 살살하게. 조금만 주입해도 부정적인 것들의 확대 속도가 더 빠르니, 내가 힘들지 않나. 가끔은 너무 답답해서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싶어 진다네. 특히, 내가 기껏 밝고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 놨는데 자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타락하는 사람들.

내가 준 선이라는 알약 백개를 먹고도, 자네의 악이라는 알약 하나에 넘어가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말일세. 하지만 자네도 알지 않나. 그런 순간 바로 우리는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걸. 천사와 악마 구분 없이. 절대자께서도 사람의 삶에 관여하지 않으시는데 감히 우리가 어찌. 베를린 천사의 시처럼 인간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이지 않나. 우리는 밝거나 어두운 영감을 불어넣어주고는 뒤로 빠져 있어야지. 자, 오늘도 열심히 일하세!




황씨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아침부터 짜증이 났다. 어제 마신 술이 머리까지 올라와 있었다. 떡진 머리를 하고는 냉장고로 기어갔다. 텅텅 빈 냉장고는 황씨 자신이 혼자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젠장. 물도 없었다. 싱크대로 가 수도꼭지를 틀고 입을 갖다 대고 물을 마셔댔다. 좀 살만했다. 황씨는 어제 일을 찾아 나섰다가 날씨 때문에 일을 공쳤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황씨에겐 타격이 큰 일이지만, 자주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했다. 대신, 술을 마시기 위한 좋은 변명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마신 술이 오늘 아침까지 속을 썩이는 터였다. 술은 언제나 황씨에게 친구와도 같았지만, 그의 가족들에겐 웬수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가출을 하고 연락이 없는 건, 다름 아닌 술 때문이었다. 머리가 아픈 아침이 되어서야 황씨는 술 마신 것에 대한 후회를 했다. 하지만 후회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더한 분노를 느껴서는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곤 했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면 또 후회를 한 황씨는 다시 술을 마셨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이 순간 혼자인 것이다.




마침 악마가 주위를 맴돌다 싸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이는, 악마가 좋아하는 무엇이었다. 이미 한껏 올라온 짜증과 숙취는 악마에게 있어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평소 하던 것보다 아주 조금만 부정적인 영감을 불어넣어도 알아서 악해질 수 있는 존재. 바로 황씨였다. 악마는 부정의 씨앗을 황씨의 영혼에 튕겨 보냈다. 그 씨앗 하나가 퍽하니 터지면서 수두룩하게 황씨의 영혼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그는 하루 종일 스스로를 괴롭히고, 악한 기운을 발산할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진상을 부리거나 자멸하거나. 악마는 그것이 재밌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항상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더 망가지는 사람들의 꼴이 우스웠다.




조금 정신 차린 황씨에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밖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였다. 갑자기 온 신경이 그 음악으로 쏠렸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어제 일을 공친 것, 가족들이 가출을 한 것. 황씨의 인생이 이렇게 보잘것없게 된 것이 모두 그 음악 때문인 것만 같았다. 음악의 소리를 따라 두리번 거렸으나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 위를 올려다봤을 때, 그는 외벽 공사를 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음악은 거기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당장 소리를 쳤다. 시끄러우니 음악을 끄라고. 김 씨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음악을 듣고 작업에 열중한 터였다. 음악소리가 누구에게 방해될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황씨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분노를 가슴에 머금고, 푸닥거리를 할 사냥감을 찾아 나선 것이다. 자신의 현재 불행을 탓할, 책임전가를 시켜야 할 대상이 필요했다. 스스로가 문제라고 생각되는 건 용납할 수가 없기에.


당장 옥상으로 올랐다.

황씨는 거기서 아래 내려다 보이는 사람을 향해 삿대질을 하거나 무언가를 던져버릴 요량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끝 층에 올라, 옥상으로 가는 길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정강이를 다쳤다. 아야! 소리를 지른 황씨는 정강이를 붙들었다. 살갗이 까진 아래로 시뻘건 멍자욱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런 씨팔! "


갑자기 분노가 더 치밀어 오른 황씨는 씩씩 거리며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박찼다.

어디 있어! 어디! 그의 눈에 저기 작업자들을 지탱하고 있던 줄이 보였다. 그 줄을 따라가면 사람들이 보일 터. 야이 새끼야! 어디 맛 좀 봐라. 욱신 거리는 정강이는 그를 더 화나게 했고, 마침 보이던 강씨의 작업 통에서 두꺼운 커터칼을 손에 들었다. 황씨의 눈은 이미 뒤집혀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작업자의 생명줄인 로프를 잘라대고 있었다. 이미 뒤집힌 눈과 함께 이성도 뒤집혀 있었다. 쓱싹쓱싹 줄을 잘라내며 황씨는 자신의 모든 분노를 쏟아냈다. 로프가 마침내 잘려 나갔을 때,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김 씨는 추락했다.




아파트 15층 높이에서 떨어진 김 씨는 죽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살았다. 잎이 무성한 나무에 걸친 것이다. 나뭇가지와 로프가 뒤엉켜 김 씨는 땅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아래를 지나던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진 김씨를 보고 놀랐다. 하지만 더 놀란 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곳에 잎이 무성한 나무가 서 있었다는 것. 화단도 아닌 주차장 한 복판에 아름드리나무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어벙벙한 김 씨는 구조되었다. 떨어지던 찰나 주마등처럼 스쳐간 그의 인생과 가족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더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자네 미쳤나?

자네 미쳤냐고. 사람의 생에 직접 관여하면 어찌 되는 줄 알면서 그랬나? 죽을 사람을 왜 살렸나? 자네가 불어넣은 영감 때문에 일어난 일은, 왜 자네가 번복하냔 말일세. 자넨 이제 지옥행이네. 절대자께서 가만있지 않을 거야! 천사가 말했다.


후회는 없다네.

난 항상 조그마한 악의 영감을 불어넣지만, 그걸 키우는 건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난 그저, 좀 괴로우라고 건넨 무엇을 사람들은 키우고 키워 서로를 죽이거나 자살을 하거나. 처자식이 있는, 그것도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는 힘들게 살아온 가장을, 아파트 옥상에 올라 그 생명선을 끊어 죽게 한다는 것은.... 악마인 내가 봐도 아닌 것 같았네.


그건 아니지 않나!

난 후회 없네. 후회...없......아..아아아..악!!!!!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