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하우스에서 그의 숨결을 느끼다.
네덜란드에서 렘브란트를 만나는 세 가지 방법
네덜란드를 떠올릴 때 우리는 풍차와 튤립, 그리고 반 고흐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 외에도 스케이트, 히딩크, 치즈나 암스테르담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건, 그중에 유명한 예술가는 단연코 반 고흐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이나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한다면, 렘브란트란 이름이 더 먼저 튀어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 그의 작품과 생애는 네덜란드의 황금기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 고흐는 1853년에 태어나 1890년에 생을 마감했다. 렘브란트는 이보다 앞선 1606 ~ 1660년까지 삶을 살았다. 반 고흐보다 2세기 앞선 바로크 시대의 이 화가는 그림과 판화에 능통했다. 반 고흐 미술관 옆 국립중앙박물관 (Rijks Museum)의 Main 전시실 한가운데를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Night Watch -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그림의 이름은 따로 있습니다. 아래 글에서 별도로 설명하겠습니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그의 위상을 말해준다.
렘브란트의 이름이 아직도 낯설다면, 그의 이름 앞에 '빛의 화가'란 수식어를 붙여보자. '아하~'란 탄식이 나오거나,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유명한 렘브란트이니 네덜란드에선 그의 흔적을 쉽사리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다음 세 가지 방법이 대표적이다.
첫째, 앞서 언급한 국립중앙 박물관에 가본다. 대표작 '야경'부터 그의 자화상까지 만나볼 수 있다.
둘째, 렘브란트 광장을 방문한다. 그의 그림에 나온 사람들이 그의 동상 아래 줄을 지어 서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셋째, 렘브란트 하우스(박물관)를 방문한다.
이 외에도, 암스테르담 중심가에 있는 치즈 계량소 2층은 렘브란트의 이름을 알리게 된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를 그린 곳으로 유명하고, 네덜란드의 몇몇 공원에서는 그의 동상을 만나볼 수 있다.
렘브란트의 숨결이 아직도 남아 있는 그곳
국립중앙 박물관과 렘브란트 광장은 여러 번 갔다 왔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시면 웬만하면 들리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그분들도 '빛의 화가'라는 수식어를 알려 드려야 알아채지만, 렘브란트의 작품을 볼 때면 과연 그의 그림 속 '빛'의 향연에 감탄하고 만다. 그래서 이번엔 아직까지 방문해보지 못했던 렘브란트 하우스로 발길을 옮겨봤다. 네덜란드 어디엔가에는 그가 쉬었던 숨결이 있겠지만, 그의 집에는 아직도 그것이 더 많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렘브란트는 이곳에서 1639년부터 1660년까지 살았다. 실제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그림뿐만 아니라 판화도 제작하여 찍어냈다.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건 1911년이다.
빛으로 일어서고, 빛 때문에 초라해진 그의 인생.
그럼에도 위대한 렘브란트의 업적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방앗간 주인의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그의 그림 실력으로 자수성가하여 큰돈을 벌게 된다. 그를 수식하는 '빛의 화가'외에도 '자본주의 화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귀족이나 개인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쌓은 명성과 부(富)때문이다. 결혼도 지방 도시의 시장이자 판사 딸과 결혼했다.
그런 그가 돈 한 푼 없이 초라하게 죽어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그렸던 '빛' 때문이었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 그려진 사람들의 원망과 예술가의 곤조가 상충하며 벌어진 일이다. 점점 일감을 일어간 렘브란트. 그래서 초상화 속 그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초췌해졌다.
이 부분은 상세히 다루었던 예전 글로 대체한다. 더불어 그의 대표작 '야경'의 진짜 이름과 이름이 바뀌게 된 이야기를 덧붙인다.
네덜란드에 왔다면, 꼭 렘브란트를 만나봤으면 좋겠다. 그를 위대하게도, 초라하게도 만든 그 빛이 얼마나 눈부신지를 직접 확인해보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참조 글: '렘브란트'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덧붙임 (그의 대표작 '야경'에 대하여)
- 원제목은 '야경꾼'이 아니다. [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다.
- 밤을 그린 것이라 하지만 낮을 그린 그림이다. 민병대장의 팔 그림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유화의 오랜 세월로 인한 퇴색이 그림 전체를 어둡게 보이게 해 Night Watch로 알려지게 되었다.
- 깃발을 든 사람 뒤에 베레모를 쓴 키 작은 사람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
주름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 그의 자화상이다.
- 설상가상. 그의 사랑하는 첫 번째 아내 사스키아가 같은 해 사망한다. 허리춤에 닭을 매고 있는 소녀가 밝게 빛나고 있으며 사스키아의 얼굴과 닮았다는 설이 억지스럽지 않다.
- 렘브란트는 외면보다 내면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되었다. 그래서 빛과 어두움으로 그것을 그려내려 했다. 어둠 속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된 자신이 싫었다. 더불어 현실적인 것보다 많은 메타포와 메시지를 녹아내게 했던 그에 대한 어떤 사람들은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그림은 3번의 습격을 받는다. 1911년 해군에서 해고된 요리사가 칼로, 1975년 은퇴한 교사가 또다시 칼로 그림의 중간을 벤다. 마지막으로 1990년 무직의 범인이 황산을 끼얹고 만다. 그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이 싫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어떤 것이 그들을 찔리게 하여 그러한 짓을 하게 한 걸까? 과연, 렘브란트 그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표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