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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10. 2017

더치페이에 대한 오해

더치 사람들은 모르는 더치페이의 진실

네덜란드와 한국, 서로 간의 오해


네덜란드에서의 생활도 이제 거의 4년이 다 되어간다.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이 즈음에, 나는 다시금 한국사람들이 네덜란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를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네덜란드에서 살면서 갖게 된 작은 사명(?)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해'라는 것의 힘은 아주 커서, 잘못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풀어주지 않으면 어느샌가 기정 사실화되어 우리 머리와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편견', 또는 '프레임'이라고 한다. 내가 가진 그 작은 사명은, 네덜란드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오해뿐만이 아니라 그 반대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바이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출장 갈 때면 간혹 가다 '개고기를 꼭 먹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는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질문이지만, 돌이켜보면 네덜란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무지(無知)에서 비롯된다. 또는 어디에선가 잘못들은 정보를 그 무지의 하얀 도화지에 늘어놓는 경우다. 그러니 한국에 대해 알게 하고, 오해는 없애야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저기 동쪽 어딘가의 변방에 위치한 나라다. 한국을 경험해보지 못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주로 휴가로 즐기는 태국이나 필리핀이 아시아를 규정하는 강력한 준거가 된다. 한국은 아시아에 있으니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한국은 태국이나 필리핀처럼 사시사철이 고온다습한 곳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오해는 한국 땅을 밟으면서부터 점차 없어진다. 개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당황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고, 태국이나 필리핀을 상상한 모습과 한국은 영 딴판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와 한국의 서로에 대한 오해는 오래전에도 있었다.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하멜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조선 땅을 밟은 박연(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은 관헌들이 횃불을 들고 다가올 때 그들에게 잡아 먹히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그들에게 조선은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나라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선 사람들은 네덜란드 사람들의 큰 체구에 놀랐다. 개처럼 다리 한쪽을 들고 오줌을 눈다거나 코가 커서 코를 머리 뒤로 돌려 물을 마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오해의 양이 줄었을 뿐, 오해는 여전하다는 게 놀랍다.


[참고 글: 박연이 하멜을 만났을 때]


네덜란드 사람들은 모르는 '더치페이'


그래서 내가 네덜란드에 발을 디디자마자, 친한 네덜란드 동료들에게 물어본 질문은 두 가지였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남녀가 데이트할 때도 더치페이를 하는지, 그리고 제방을 손가락과 온몸으로 막아 마을을 구한 소년의 이야기가 실화인지. 그것은 곧 내가 가진 네덜란드에 대한 얄팍한 지식이었다. (후에 두 질문 모두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좀 싱겁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그저 어디에선가 전해 내려오는 설화 정도로 거론되는 이야기.


재미있는 것은 더치페이에 대한 질문인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정말 '더치페이'가 생활화되어 있는지 물었을 때 난 반대로 질문을 받았다.


"'더치페이'가 뭐야?"


이 질문을 역으로 들었을 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되려 질문을 하는 그 동료의 의아한 눈빛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다.


얼마 전에도 한 거래선 파트너를 만나 최근에 내가 네덜란드에 대한 책을 썼다고 말하니, 뭐에 대해서 썼냐기에 네덜란드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에서 썼다고 말해주었다. 더불어, 오해를 좀 풀기 위해 '더치페이' 등에 대한 유래를 썼다고 하니 '더치페이'가 뭔데? 란 질문과 함께 난 다시 그것을 차분히 설명해주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네덜란드에 '더치페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서양의 합리주의에 근거하여 다른 어느 유럽에서도 하는 '자기 것은 자기가 내는 수준' 정도다. 이렇게 보면 더치페이의 유래를 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한 건, 네덜란드 사람들이 만든 말은 아니라는 것은 파악이 되고 만다.



요약하여 말하면, '더치페이'는 영국인들이 지어낸 이야기다. 원래 말은 '더치 트리트(Dutch treat)'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필두로 전 세계 해상 무역을 장악하였다. 영국과는 무역뿐만 아니라 식민지를 두고도 사사건건 다투었다. 네-영 전쟁을 3번이나 했을 정도. 이에 두 나라의 갈등으로 영국인들은 네덜란드 사람들을 비하하기 시작했다. 쪼잔하거나 인색한 사람을 보며 'Go Dutch!' (그래, 더치식으로 하자!)라던가 Treat 이란 단어를 'Pay'로 바꿔 조롱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네덜란드 사람들은 오히려 이 단어에 친숙하지 않은 것이다.



네덜란드 친구들과 함께 지내보면, 사실 이러한 조롱을 받을 빌미를 제공한 건 역시나 네덜란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세계에서 신장이 가장 크지만, 청렴함과 소박함 그리고 검소함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기 때문이다.


[참고 글: '더치와 콜라병' 네덜란드 사람들이 그토록 검소한 이유]


어찌 되었건, 내가 '더치페이'는 큰 오해라고 부르짖는 이유는 그 말의 유래가 네덜란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지내면서 인색하고 매정한 (우리가 알고 있는) '더치페이'를 당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치 트리트'를 받았던 기억밖에 없다. 손님이라며 대접을 받은 적도 많다.

생일을 맞이한 사람이나 기쁜 일이 있는 사람,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은 회사 탕비실 한 편에 마음껏 즐기라는 인사와 함께 케이크나 다양한 간식을 내어 놓는다. '나 생일이니 축하해줘...'가 아닌 '내 생일이니 마음껏 즐겨'의 개념이다. 이것이 진정한 '더치 트리트'다.


이런 따뜻한 '더치 트리트'를 받았으니, 이러한 오해를 풀어줘야 하는 사명감이 들 수밖에.

물론, 네덜란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오해도 풀어줘야 함이 마땅하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해는 생길 수밖에 없지만, 그 오해가 풀리면 풀릴수록 그 둘의 사이가 좁혀질 수 있다고 믿는다.


P.S


그래서 매년 나의 생일엔, 생일이 비슷한 동료와 함께 아이스크림 트럭을 불러 동료들을 대접한다. 내가 받은 고마운 순간들을 떠올리며.


또 하나의 오해 아닌 오해 [참고 글: '네덜란드엔 더치커피가 없다.']




한 동료의 생일. 어김 없이 사무실 한 편엔 따뜻한 인사와 간식이 놓여 있다.
나는 매년 생일이 비슷한 동료와 함께 아이스크림 트럭을 불러 동료들을 대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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