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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28. 2017

회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듯

Part 3. 심리학으로 바라보는 직장생활 #8

회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회사를 위해 존재하지 않듯이!


당신이 만약 직장인이라면, 지금 당신이 일하고 있는 직장의 이름과 직급을 빼보자. 그러면 당신에겐 무엇이 남는가? 당장 사회에서 만난 누구에게 자신을 소개한다면 꽤 난처할 수도 있겠다. 어디 다니는 누구, 또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누구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으니. 어쩌면 명함이 없는 것과도 같다. 당장 당신이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의 직장과 직급을 내려놓고 돈을 빌릴 수 있는가? 내가 누구의 아빠이고, 어떤 이의 부인이니 대출 좀 해주세요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회사에 나가기 싫다고 투덜대지만 마음속으로는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 즉,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중 '소속 욕구'를 (잠시나마) 해결한 것이다. 만약 사회에 진출한 지 꽤 되었는데 취업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해보자.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매시간이 막연하며 다가올 미래에 영영 어딘가에 취업하거나 소속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현재 직장에서 하는 불평과 불만은 행복에 겨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그렇게 한 자리에 안주하게 되는가. '소속 욕구'를 실현하고 난 뒤에는 '존경받고 싶은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어떤 이는 이러한 상위의 욕구를 직장 내에서 찾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직장을 박차고 나가 그것을 이루기도 한다.


지난 추석, 직장에 계신 임원 분께 인사 문자를 보냈다. 역대 가장 긴 추석 연휴를 즐겁게 잘 보내고 계시냐는 안부인사였다. 그분의 인사는 참으로 의외였다.

"야, 연휴가 너무 길어. 빨리 회사 가고 싶다!"

그분에게 있어 직장은 삶의 전부인 것이다. 가족에겐 인정받지 못해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곳. 즉,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곳이다. 이런 분들이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지난 20~30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한 나를 어떻게 버릴 수 있냐는 한탄과 함께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지금껏 많은 어르신들이 그래 왔다. 어떤 분들은 퇴직 이후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나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신을 우러러봐주던 곳이 직장이었는데 그곳에서 버려졌다는 것은 결국 인생에서 가장 큰 무언가를 빼앗긴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생활을 통해 자신의 정체감을 확립해가고 그 좋은 에너지를 잘 활용하여 퇴직 후에도 승승장구하거나, 나름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도 많다. 직장생활을 통한 존재감 형성은 분명 나 자신과 회사가 '별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나 자신을 충분히 알고 자존감을 확립하면 내가 회사에 기여할 것이 무엇이고, 반대로 내가 회사로부터 받을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직장의 이름, 재계 순위, 직급과 직책이 내 존재의 이유가 되어선 안된다. 내 영혼의 명함이 되어선 안된다. 그것을 활용하여 나의 삶을 개척하는 일은 있을 수 있다. 회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나 하나 없어져도 회사는 잘 굴러간다. 그러니 내가 회사를 위해 존재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일을 대충하거나 자신의 열정을 줄이라는 말이 아니다. 직장에서 하는 직'업(業)'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갖고 배우고 숙련해 나아가야 한다.

직장 그 자체와 나를 너무 동일시하지 말자는 거다. 너무 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일은 열심히 하되, 두 존재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회사 가기 싫은 사람들이 모인 곳.
그러니 사람들 뒤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는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참 힘들다. 아침에 출근하여 마주하는 동료, 후배, 상사 그리고 심지어는 다른 부서의 모르는 사람들까지. 이윤창출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회사라는 한 배에 탄 사람들은 서로 아웅다웅한다. 분명 같은 월급쟁이들인데 서로를 향한 부침은 끊임이 없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총질하는 형국이다. 대체 왜 그럴까?

앞서 우리는 사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목적을 상기해보면 '사람'의 이면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함이었다. 즉, '사람'의 심리를 보기 위한 것.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행동이나 반응은 결국 '심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 '심리'는 '불안'과 '욕구불만'으로 결부된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가지고 있고, 이 '불안'이 쌓이고 쌓여 '욕구불만'으로 발산된다. 이 외에도 성장 과정 중에 맞닥뜨린 각각의 경험에 의한 다른 인생관이 충돌할 때 많은 갈등을 야기한다. 내가 좋아하는 행동을 다른 사람은 불쾌해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반응'에 '반응'하 여 없다는 것이다. 즉, 저 사람이 '반응'한 것에 마음 아파하고 기분 나빠하며, 어떻게 그것을 맞받아칠까에 골몰한다. 그리고 그 '반응'과 '반응'은 갈등을 만들고 총성 없는 전쟁을 일으켜 '평화'와 '안정' 그리고 '행복'이라는 단어를 저 멀리 사라지게 만든다. 우리는 직장 생활이 '남'이나 '다른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물론, 맞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의 행 이면에 있는 그들의 '심리적 상태'나 '불안'이 보인다. 그것에 반응하는 내 마음은 어떤가? 혹시, 반응하지 않아도 될 것에 반응하며 나를 스스로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그들의 '반응'에 대해, 내가 굳이 '반응'한 건 아닐까?

사람들은 저마다 저 자신을 '방어'하기에 여념이 없다. 혹시라도 무시당할까 봐, 밉보일까 봐. 또는 좀 더 멋있게 보이고 싶거나 더 똑똑하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한 것에서 오는 '행동'과 '반응'은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할 것들이다. 자꾸 사람만 보지 말고,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즉, '결과'만 보지 말고 그것의 '과정'이나 '원인'을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것이 심리학을 공부하고 알아가는 목적이자 목표다. 물론, 남을 바라보기 전에 나부터 바라봐야 한다.


회사는 존중받기 위해 나오는 곳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에 존중받기 위해 나오는 것 같다. 그들은 일분일초가 멀다하고 투덜대기 바쁘다.

아니, 팀장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옆에 그 유관 부서에 있는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메일을 싸가지없게 보내지? 감히 나한테?
남들 다 보는 앞에서 그 사람이 나에게 보고서 숫자가 틀렸다며 지적을 하더라고!

스스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위와 같은 투덜댐의 이면에는 '나는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데 이런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다. 직장은 그런 곳이 절대 아니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나는 직장에 누군가를 존중해주러 나가는가? 아니다. 우리는 일을 하러 나간다. 그 일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되며, 회사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는 그 일. 직장에선 숫자가 인격이다. 꼭 숫자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목표나 합의된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가 우선이다. 개인의 감정이나 사정, 그리고 감성을 어루만질 여유가 없다. 물론, 모든 것이 좋고 잘 흘러가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세상이라면 조금의 여유가 있겠지만, 작금과 같은 저성장의 시대에는 더더욱 그런 것은 없다. 누구를 존중해줄 여유도 없고, 내가 누구에게 존중받아야만 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상처도 깊다. 그래서 우리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 무작정 존중받길 바라는 것보다는 그런 곳이 아닌 곳에서 어떻게 마음을 단련하고, 자신의 마음을 보호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이 낫다.




우리는 어쩌다 직장인이 되었을까? 사람은 왜 태어나서 정처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각자의 사정과 운명 그리고 삶의 목표가 어우러진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직장인'이라는 단어 하나에 동질감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나는 함께 고민하고 싶다. 직장인이어서 더 행복할 순 없는지, 좀 더 마음 편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는 없는지. 하루하루 고된 마음의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은 없는지. 물론, 이것도 착각일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하지만 한 사람의 착각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착각을 한다면 나는 희망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난 오늘도 행복한 착각에 빠져본다. 심리학을 통해 많은 직장인들의 마음이 치유되고, 험난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맘 아프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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